희랍을 다룬 책을 몇 권 주문하면서 이디스 해밀턴의 책도 추가했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절판된지 제법 되었던 책이 다시 나왔길래, 출판사가 재계약해 다시 낼만큼 눈여겨볼만한 부분이 있을지 궁금해서였다. 한편으로는 입문서로 자주 권해지는 키토를 대신할만한 책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엊그제 도착해서 오늘 밤에 찬찬히 넘겨보았다. 결론부터 말해, 다시 나오지 않는 게 좋을 뻔했다. 책이 나쁜 건 아니다. 그러나 고전학 책은 (서구에서) 당대 최고의 저자라면 누구나 욕심내는 영역이고, 본인의 서술을 첨가하려면 식은땀을 흘려야 하는 영역이다. 다시 말해, 이 영역에서 책을 내는 저자라면 수준급의 저작과 비교평가를 감수해야만 한다. 그렇게 보면 평정한 책이다. 지성사/문화사 분야에서는 키토의 책보다 떨어지고, 사..
최근에 한국 남성, 정확하게 말해 '한국 남성성'에 대한 논의는 (정희진 외 5명, 교양인, 2017) 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니까 '한남')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쓴 최태섭씨의 저작도 그렇고, 반지성주의를 키워드로 삼아 남성성을 다룬 이라영씨의 저작도 이 책의 자장안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읽어보면 학술적 논의라서 딜레탕트가 왈가왈부할 거리는 아니다. 다만, 이 책을 다룬 다른 논문을 참조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일단 오혜진 선생의 논문 (황해문화 96호)를 들춰볼 수 있다. 그런데, 그것과 별도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심히 의심스럽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무엇보다 정희진씨의 다음과 같은 테제가 그랬다. "젠더가(는) 적대를 전제로 하는 권력관계"라는 것. 정치란 적과 동지의 구분에서 시작..
한가한 면이 없지 않지만 아침에 을 읽었다. 총평하면 아렌트 독자가 좋아할 그래픽 노블이자 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렌트 독자가 아니라면 좋아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책이 아렌트 독자를 겨냥한 책이라는 건 제목에서 드러난다. 이라는 평이한 제목은 어떻게 아렌트 독자를 낚는가? 바로 '세 번의 탈출', 즉 아렌트에게는 세 번째 탈출이 없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아렌트의 탈출은 두 번뿐이었다. 대학 졸업 후 독일에서 프랑스로 탈출,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탈출. 아렌트 탈출은 두 번뿐이다. 세 번째 탈출은 무엇일까? 이것이 책이 독자를 끌어당기는 지점이고, 정확하게 자신의 독자를 설정하는 방법이다. 이 책은 한나 아렌트 팬덤북이다. 책의 요약이나 세세한 논평은 피하겠고, ("학자의 삶이란 흥미로울게..
여름에 빡빡한 책은 안 읽는다. 땡기는(?) 책이 있어도 피한다. 2012년, 도 닦는 기분으로 빡빡한 책을 땀 뻘뻘 흘리며 읽었다가 더위를 먹어본 뒤 미련한 짓 안하겠다고 결심한 탓이다. (그렇게 읽은 책이 피와 살이 되었다면 모르겠는데, 지금은 무슨 내용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별볼일 없는 책이었다.) 물론 새 책이 나오면 산다. 하지만 읽지는 않는다. 선선해지면 꺼내볼 뿐이다. 그러니 매년 여름은 쉽고 간결한 장르소설을 읽는다. 물론 일주일에 한 권 정도다. 계보도 모르고 좋아하는 작가도 없기 때문에 그때그때 인기있는 책을 읽는다. 그런데, 올해는 볼만한 책이 없었다. 펼쳐보았던 두 세 권의 책은 기대에 못 미쳤다. 그 때문에 다른 책으로 우회하기로 했는데, 공교롭게도 일본 저자들의 에세이다..
케네스 미노그의 . 며칠 간 띄엄띄엄 읽다가 완독. 아우 재미있어라. 이 분 저작을 더 읽어보고 싶다. 그런데 번역된 책이 없다. 동일 저자의 이름으로 이란 책이 있는데 같은 저자인지 모르겠다. 절판이라 대출해보려 했더니 남산이나 종로 도서관 서고에 있다는 소식. (두둥!) 책에 대해 단평하자면, VSI의 기본 취지에 충실하게도 '교과서' 같은 책이다. 교과서 같은 책은 두 종류다. 하나는 설명이 충실해서 교과서만 잘 읽어도 공부가 되는 책. 다른 하나는 문장이 압축적이고 밀도가 높아서 선생이 설명하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되는 책. 이 책은 후자다. 따라서 독학(?)에는 적당하지 않다. 하지만 열정적인 아마추어라면 저자가 언급하는 책을 읽으며 주요 논지를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 후에 전체를 요약/개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