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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우 번역본 <<비극의 탄생>>을 읽다가 몇 가지 확인할 것이 있어서 <<명랑철학>>(이수영, 동녘, 2011)을 뒤적뒤적 했다. 그러다 새삼 <<명랑철학>>이 무척 괜찮은 입문서이자, (입문서로서의 질과 별도로) 아주 별볼일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의 니체 붐(?)은 새로운 니체전집이 간행된 것을 기점으로 수유+너머의 영향이 지대했고, 이들이 주도한 니체 붐에는 니체를 ‘삶의 멘토’로 불러내려는 시도가 일관되게 관철되어 있었다. 가령, “삶에 환멸을 느끼고 절망하고 있다면 니체를 권하고 싶다. 니체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겨울 속에서 겨울의 극복을, 회복기의 따뜻함을, 되돌아온 활력을 전해주는 철학적인 의사이기 때문이다.”(명랑철학, p7) 같은 구절은 어떤가?
그러나 유고를 제외하고 니체가 정식 출간한 책만 살펴보더라도, 인간에 대한 니체의 이해가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드러난다. 여성과 대중에 대한 도가 넘은 경멸은 기본이고, 인간이 동물과 초인의 중간자라는 엉터리 진화적 발상과 더불어, 과거를 긍정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함으로써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하라는, 요컨대 창조하는 예술가의 삶을 인간 본연의 삶으로 제시하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어질 지경이다. 우리 모두 경험하듯이, 인간의 삶은 그렇게 급진적이지 않다. 어제와 오늘이 비슷하고 내일도 그러하며, 같은 원리로 10년후의 삶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인간의 선택지는 사회가 제시하는 제도와 관습의 틀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하며, 자원의 압박과 개인의 욕망, 사회적 요구 사이에서 고정되는 것이 정상이다. 되려 급진적인 환경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인간은 급진적이지도 않고 창조적이지도 않으며 변화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초인으로 이행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은 미친 사람뿐이다. 토리노의 졸도 이후 디오뉘소스가 된 니체가 그러했듯이.
말하자면, 니체의 모든 주장은 사상적 논의일 뿐이다. 1900년에 죽은, 한물 간 별종 철학자 취급을 받던 니체가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프랑스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의 영향이었으며, 여기에는 당대(색이 좀 바래기는 했지만 지금도) 1급의 사상가로 칭송받던 푸코, 들뢰즈, 리오타르, 데리다 등이 포진되어 있었다. 이들은 기존 사상의 내용이나 효과에 주목하기 보단 근본적 가정에 의문을 품고 이를 해체하려고 했는데 푸코의 권력분석이 대표적이다. 이성에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한 근대의 기획은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사람들에게 좌절과 분노를 불러일으켰으며, 포스트 모더니스트의 작업은 이것을 사상적으로 표출한 것에 가까웠다.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이성의 절대성에 부여된 권력과 가치를 깊이 의심했고, 그런 그들에게 가치전환의 과정을 면밀하게 해부했던 '니체의 계보학’은 효과적인 무기였다. 요약하자면, 계몽의 기획과 인식의 절대성을 해체하려던 사상적 시도는 니체를 재발견했으며, 그들의 사상이 한국에 건너오면서 니체가 삶의 멘토로 전유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건 방향이 좀 잘못된 것이다.
물론, 니체의 사상을 삶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국가와 권력을 해체하고 새로운 삶으로 탈주하는 ‘실천형 삶의 사상’이 나올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도 니체의 사상이 현실과 정교하게 접합되고 변용될 때의 이야기다. 니체의 망치는 사상적 차원에 있을 때 서구 형이상학과 근대 인식론에 파열을 일으킬 수 있겠으나, 야근에 시달리는 직장인에게는 쓸모없는 도구다. 정확하게 말하면 어디다 써야 할지 알 수 없는 도구다. 아내의 잔소리즘을 방어하기 위해 쓰거나, 직속 상사의 꼰대적 기질을 ‘계보학’적으로 분석할 때 쓰거나. 어느 쪽이든 안 쓰는 것만 못하다.
니체를 삶의 멘토로 불러내려는 시도는, 그 시도를 시행한 사람의 역량에 관계없이 별볼일 없어진다. 그건 니체의 사상이 삶의 차원에서는 별볼일없기 때문이다. 근대 세계의 우연성과 무의미성에 전율했던 사상가로서, 폭력적 생성의 세계에서 초월적 가치를 해체하고 실존적 의미를 창출하려 했던 철학자로서 니체를 읽는 것은 나쁜 독법이 아닐 것이다. 우연히 몇 해 전에 읽은 <<명랑철학>>을 뒤적거리며 짧은 소회를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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