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Reviews

2015 올해의 책

빵가게제빵사 2015. 12. 31. 13:44

한 해를 끝내며 책을 고른다. 언제부터인가 ‘올해의 책’ 같은 것이 별 의미가 없어졌는데, 올해의 책으로 뽑히는 리스트들이 ‘올해의 책’ 기준에 함량미달하기 때문이다. 올해의 책이란 1) 높은 판매고나 크게 주목받은 도서에서 2) 근래 가장 첨예했던 의제를 다루거나 현재의 난관을 정면으로 다루는 책이어야 한다. 올해 그런 책이 없었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 세월호 이슈부터 표절문제까지 책은 발빠르게 나왔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근 10년 가까이 (혹은 그보다 더 넓게) 진행된 ‘공적영역의 붕괴와 한국사회의 명백한 퇴행’을 가리키면서도 그것에 대해 어떤 답도, 정면대결하려는 의지도 내놓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오히려 상투적으로 말한다. “분노해라” 간단히 말해, 87년 6월처럼 거리로 쏟아져 나오라는 것이다. 이런 해법은 정치적 기획의 처절한 빈곤을 드러낸다.

 분노의 정치를 유도하려는 시도는 여러차례 있었다. 기본적으로 ‘젊은 너희들이 싸우지 않으면 누가 싸우냐’라고 질타했던 20대 세대론부터 2009년 촛불집회, 근래의 세월호 추모집회와, 곧 이뤄지게 될 종군위안부 관련 집회까지. 그러나 20대 세대론의 막강한 영향력이 ‘20대 개새끼론’로 마무리되었듯, 최근에 이루어진 분노의 정치는 특정 주체들에 대한 혐오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 결과 정치적 발언은 논쟁이 아니라 증오와 경멸의 언어가 되고 말았다. 문제는 이것이다. ‘증오와 경멸의 언어’가 줄어들 수가 없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타자는 모두 ‘대학입시의 경쟁자’이자, ‘입사시험을 두고 벌이는 적’이면서, ‘명퇴를 늦추기 위해 중상모략해야 할 대상’이고, ‘내 수익을 늘리기 위해 절멸시켜야 할 동일업종 자영업자’다. 실질임금은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고, 기업은 고용없는 성장이 가능한 기술혁신을 달성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체제는 인간이 필요없는 이윤획득 구조로 개편되었고, 이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와 통치가 기존의 도덕율과 접합하고 자기 진정성의 윤리를 구부려 구성원들에게 되먹임하므로써 시대 이념으로 자리잡았다. 요컨대 부당하다는 감각은 경제적 원칙과 이데올로기적 검증 앞에서 허물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서 정치적 공동감각이 유지된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분노는 이 빈약함 틈을 메워보려는 발악이다. 그러나 결과는 혐오다. 공적 분노가 가능하지 않으므로, 혐오와 증오라는 사적 감정으로 귀결되는 것은 필연이다.

방법이 있다면 새로운 대안을 끊임없이 시험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대안을 시도하기엔 가난하다. 가계대출이 천조가 넘는 사실이 증명하듯, 빚으로 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 새로운 세대는 단칸방 하나 얻어 살기 어려워 장기 연애를 택하지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다. 자영업자들은 5년 이내에 절반이 폐업하고 나락으로 추락한다. 노인세대 40%가 빈곤계층으로 분류된다. 헬조선이 그냥 나오는게 아니다. 이렇게 여유가 없고, 노예처럼 부려먹히는 사회에서 대안을 시도하기는 어렵다. 사실 우리 모두는 생존마저 버거워하는 불안에 상시적으로 시달리고 있다. 그 결과 “사회자체에 아무런 이상도 존재하지 않았고, 모든 사람이 각자 다투면서 군력을 숭배하고 남용하는 세상”(수양제, 미야자키 이치사다)이 된 것이다. 현재 한국의 정치권력이 행하는 지리멸렬함과 퇴행은 원인이 아니다. 결과다. 우리는 수양제를 탄생시킨 시대조건과 매우 유사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여기에 어떤 말을 덧붙여야 할지 모르겠다. 나아가야 할 방향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참고 견뎌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 지점에서 나는 프랑수아 줄리앙의 <<전략>>을 곱씹는다. 서양과 중국의 전략 개념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는 책이다. 얇고 읽기도 수월하다. 하지만 중요한 한 가지를 가르쳐주는데, 우리가 서양의 ‘전략’, 즉 ‘모델’을 잃었다고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모델이 없다면 중국의 ‘전략’ 개념으로 눈을 돌려볼 수 있다.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시켜 ‘성취’할 수 있고, 모델화 할 것이 아니라 상황의 잠재력(형세)을 파악하여 우회할 수 있다. 프랑수아 줄리앙은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내가 의거할 것이 아무것도 없고, 나를 실어갈 일말의 유리한 요인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이렇다. “형세를 평가했을 때,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유리한 기미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대로 기다려야 한다. 알다시피 세상은 쇄신을 멈추지 않으며 내가 개입된 상황이 쇄신되는 가운데 내가 다시 의거할 수 있는 다른 형국이 반드시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말이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손놓고 있으란 뜻이 아니다. 궁지에 몰린 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저자는 마오쩌둥의 대장정을 예로 든다.

“중국 혁명은 갑작스럽게 중단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장제스의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제거되었다. 그 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생존자들과 중국 전역에 흩어졌던 다른 공산주의자들은 장강산 벽촌에 다시 모였다. 그러나 이곳에 더 이상 그들의 세(勢)는 없었다. 반면 장제스의 민족주의자들은 세의 정점에 있었다. (...) 장제스는 장강산의 공산주의 기지를 근절하기 위해 포위작전을 실행한다. 1차, 2차, 3차, 4차, 5차 포위작전이 진행되고 1934년에 공산주의자들은 제거될 상황에 처한다. 이런 경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마지막 순간까지 가치를 걸고서 싸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영웅적으로 싸우고 항복하지 않는 근위대처럼 말이다.

바로 이때 공산주의자들은 역사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중국 서부로 크게 우회하는 대장정을 시작한다. (...) 노정중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러나 이 작전의 논리적 귀결에 따르면, 그리고 비록 작전이 서둘러 진행되었고 해도, 대장정은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고 결국 성공할 여정이었다. 마오쩌둥이 공산당 권자에 오른 것이 바로 이 때다. (...) 이로써 마오쩌둥은 차츰 세를 되찾을 수 있었고, 1936년에 장제스의 민족주의자들을 압박하고 다시 그와 연합하는데 성공함으로써 결국 상황을 뒤집을 수 있었다. 1934년에는 민족주의자들에게 제거될 상황이었음에도 말이다.“ -프랑수아 줄리앙, <<전략>>, 이근세 역, 교유서가 2015. p90~91

전략가는 조건을 계산하고, 상황을 살피고, 쇄신의 요인들이 자라도록 한다. 그는 좌절하지 않는다. 자신을 파괴하지도 않는다. 비장미에 몰입된 영웅처럼 적진으로 뛰어들어 죽는 것은 그가 가장 경계하는 일이다. 상황의 잠재력이 없다면 물러나 우회하고 세가 자라도록 끊임없이 변화시킨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적 한계로 제약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 매우 힘든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이미 그런 것 아닌가) 그러나 정치적 함의로 받아들이건, 삶의 방향으로 받아들이건, 우리가 가장 피해야 할 것은 영웅처럼 죽음으로 돌진하는 것이다.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며, 주도적 요인이 없다면 상황을 면밀하게 직시하면서, 쇄신의 계기를 찾고 발화하도록 해야 한다. 중국의 전략개념이 가진 태생적 한계(프랑수아 줄리앙은 이 점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에도 불구하고 지리멸렬한 현실은 책의 교훈을 두고두고 곱씹게 한다.

이근세 선생이 번역하고 교유서가에서 발행한 프랑수아 줄리앙의 <<전략>>은 수월히 읽히면서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올해의 책으로 꼽는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TAG
more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