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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를 용납하지 않는 결기

빵가게제빵사 2015. 9. 3. 19:20

 

"하지만 사람이든 문물이든, 나는 저편에 있는 것에 대해 우러러보는 경의를 일상에서도 품고 싶지 않고, 더구나 학문의 세계에서는 품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물로 나에게도 경의를 품는 철학서가 있고, 존경할만한 철학자가 있기 하지만, 그것은 비판과 대결과 격투를 통해 자라난 경의이고 존경이지, 그 앞에서 감히 몸을 굽히지 않을 수 없는 그러한 경의는 아니다. 일상의 사귐도 그렇지만, 사상서나 사상가에 대해서도 이쪽이 등을 꼿꼿이 펴고 제대로 서는 것이 우선은 사귐의 기본일테다." - 하세가와 히로시, <뿌리깊은 서열의식>,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 조영렬 역, 교유서가, 2014, p78.

하세가와 히로시의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는 서평집이다. ‘고전'이라고 불릴만한 15권의 책을 다루는데, 대체로 철학고전이고 문학고전(셰익스피어, 도스토옙프스키)이 일부 섞여 있다. 독후감부터 밝히자면 이 책은 지나칠 정도로 밋밋하다. 청소년용 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평이하고, 고전을 다루는 것 치고는 해석이 단조롭다. 적절하지 못한 평을 하는 것은 아니나, 딱히 서평집으로 묶을만큼 눈에 띄는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다. 플라톤의 <<향연>>을 평하면서, “’아름다움 자체를 대상으로 삼는 학문은 다름아닌 철학을 가리킨다. 에로스론을 마무리하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는 에로스를 찬미하는 것이 곧 철학을 찬미하는 것이 되는 지점에서 끝난다.” (p71) 같은 평면적인 서술을 거리낌없이 쓰는 것을 보면 저자가 철학을 전공했다는 사실마저 의심스러워진다. 그러나 묘하게도 책이 손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물감 때문이다. 손쉬운 독서를 방해하는 것은 고전을 평하는 말로는 적합하다고 보기 어려운 표현에서 두드러진다. 가령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논하는 저자의 서술을 보자.

“<<방법서설>>은 사람에게 살아갈 용기와 생각할 용기를 주는 상쾌한 책이다.” - p44.

이 표현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평하는 저자의 목소리도 살펴보자. 다음과 같다.

“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중학교 교과서에서 다뤄질 만큼 유명한 책이다. 인권사상을 외친 역사적 명저로, 로크의 <<통치론>>이나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과 더불어 이름이 올라있다. 중학생에게는 어렵겠지만 가능하면 고등학생 때나 대학생 때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물건이 흘러넘치는 소비사회에 살고 심리적으로는 끊임없이 자신의 내부로 생각이 향하는 경향이 있어 고립된 느낌에 시달리기 쉬운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인간에 대한 신뢰가 튼튼하게 뒤를 받치고 있는 시민사회의 모습을 그린 루소의 책은 내실 있는 희망을 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p105

<<방법서설>><<사회계약론>>은 인류가 남긴 고전 텍스트 속에서도 위치가 각별하다. 전자는 근대성의 출발점이자, 주체 철학의 정초자로 자리매김되어 있으며, 후자는 근대 정치공동체의 이념을 구현하는 규범적 텍스트로서 그 의의와 가치를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요컨데, 이들 텍스트에 대한 평은 텍스트의 가치와 역사적 위치를 한 번 정도는 언급하고 넘어가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런데 저자 하세가와 히로시는 텍스트들의 역사적 가치와 의의, 권위를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오직 살아갈 용기와 생각할 용기를 주는 상쾌한텍스트로서, ‘중학생에게는 어렵겠지만 가능하면 고등학생 때나 대학생 때 읽으면 좋은 텍스트로서만 읽어갈 뿐이다. 즉 저자가 추구하는 것은 고전텍스트의 일반적인 독해가 아니다. 오히려 사려깊지 못하다고 평가될법한 개인적인 독해 방식이다. 15편의 고전을 모두 이런식으로 읽어나가는 모습을 통해 텍스트가 가진 권위를 모조리 제거하고 철저하게 개인화된 영역에서 의미를 추적하고 평가하겠다는 저자의 결기가 두드러진다.

하세가와 히로시는 도쿄대학 철학과에서 박사과장을 수료한 철학자다. 흥미로운 건 두 가지 행적인데, 우선 학계와 절연한 채 시민들과 헤겔 텍스트를 원문으로 직접 번역하여 읽는 스터디를 20년 넘게 진행해 왔다는 점과 일반인도 읽을 수 있는 <<정신현상학>> 번역본(의역본)을 냈다는 점이다. 선후관계가 불분명하긴 하지만, 하세가와 히로시는 학계, 텍스트, 교수에 대한 권위마저 '쓸데없는 장식'이라며 거부한 반골이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고전'을 철저하게 개인화 된 영역에서 평가할만큼 외부의 평가를 무시하며, 그 고전을 가르치는 '교수'의 권위마저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할만큼 반골기질이 강한 것이다. 따라서 난해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일상적인 언어만을 사용하여 번역한 것은 필연이다. <<정신현상학>>을 이해하기 위해 권위자에게 기대거나 학계에서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쉬운 번역으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번역본을 마주하여 '스스로 읽고 격투하면되는 것이다. 텍스트 앞에 단독자로 설 것. 그 밖에 쓸데없는 것들에 머리 숙이지 말 것. 인간은 그렇게 자신의 '자유'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하세가와 히로시의 신념이고 실천지점이다. 미친 이념(?)이기도 하고, 매우 훌륭한 지점이기도 하다.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가 철저히 개인화된 영역에서 이루어진 독해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외부의 권위나 평가를 배제한 채 자신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독해가 행해져야 한다는 것을 서평 15편을 통해 내보이고 있는 셈이다. 학자들이 빠지기 쉬운 지적허세를 용납하지 않는 엄정함이 전제되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선 귀감으로 삼아도 좋을만한 책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서평집 자체가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읽을만한 통찰이 나오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용이 없는 서평으로 축소되는 것도 아니다. 한 번 읽을만한데, 그냥 거기까지다. 그래서 이 짧은 독후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 이 책은 서평의 탁월함을 자랑하는 책이 아니다. 읽을 수록 밋밋하다. 하지만 그 밋밋함이 이 책을 관통하는 철학이자 저자의 신념이고 그것을 우리는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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