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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태,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 - 투고의 왕도>>, 유유, 2018, 4月

반양장, 신국판보다 작음, 142쪽, 10,000원.

평소와 다르게 이 책은 견적부터 내는 게 옳겠다. 왜? 책 스스로 누구에게 읽혀야 할지 견적을 내고 있으니까. 소개하자면 이렇다.

핵심독자 : 완성된 원고를 출판사에 투고하기 전에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알고자하는 사람, 자신의 지식, 경험, 감상등을 글로 써서 책으로 출판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하게나마 해 봤거나 이를 실현에 옮기기 위해 이제 막 원고를 쓰기 시작한 사람, 투고 원고를 검토하는 출판사의 특별한 기준이나 관점이 있는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 이미 한 차례 이상 투고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거절의 메일을 받아 본 적이 있는 사람, 그럼에도 또다시 원고를 수정하고 투고하기로 마음먹은 사람.

확산독자 :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거나 편집자의 일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 원고를 파악하는 법 또는 기획서 쓰기의 기본기를 다지고 싶은 출판사 1-3년 차 편집자, 1-3년차 편집자를 교육하고자 하는 5-6년차 선임 편집자. 글쓰기와 출판을 주제로 책을 쓰는데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는 작가 또는 이와 관련된 책을 준비하고 있어서 유사/경쟁 도서를 검토하고자 하는 편집자 및 마케터.

                                                                                                                                                                -p79~80

여기까지가 책이 밝힌 예상 독자다. 내가 덧붙일 건 이 책은 천천히 읽어도 2시간이면 충분하며, 편집 업무상 필요한 경우가 아니고는 들여다 볼 이유가 없는 책이라는 것 뿐이다.

잠깐. '편집 업무상 필요한 경우가 아니고는 들여다 볼 이유가 없는 책'이라고?

얼핏보면, 책을 내고 싶어 원고를 투고하는 사람을 위한 책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럴듯한 외피에 속으시면 안 된다. 이 책은 원고 투고자를 대상으로 하는 척 할뿐 실제 독자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확산독자’. 즉, 신입 또는 1~3년차 편집자다.

왜 그럴까? 단적으로 말해, 이 책은 편집 업무를 당신에게 시키기 때문이다. 이 책의 조언을 따라가보자. 책을 투고하려면 당신은 다음과 같은 일을 해야 한다. 1) 자신이 쓸 수 있는 내용으로 진정성을 담아 원고를 쓴다. 2) 편집자의 검토 기준과 예상독자를 가정해 그에 맞춰 원고를 신중히 수정한다. 3) 구체적이고 명확한 방식으로 자기 책 소개서를 만들어 출판사에 투고한다. 여기서 중심은 ‘편집자가 원고를 검토하는 기준', '예상독자를 설정하는 방법’, ‘구체적이고 명확한 방식으로 자기 책을 소개하는 방법’이다. (자기 책을 소개하는 양식까지 제시한다.) 그런데 이 일은 과연 저자가 할/할 수 있는 일일까?

저자란 자신이 쓸 수 있고,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쓸 뿐이다. 그게 팔릴만한 상품이 될지 어떨지는 본인이 판단할 영역이 아니다. 그건 시장과 원고를 고려하여 상품을 만드는 편집자가 할 일이다. 아니면, (아주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하여) 원고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방향을 제시하여 저자가 원고를 수정하도록 노력하는 편집자가 할 일이다. 한편, 시장을 조사하고 독자를 예상하여 그에 걸맞는 원고를 찾아 출간하는 건 숙련된 편집자조차 잘 이루지 못하는 일이다. 소설 같은 경우, 국내소설은 연 1100~1500여종, 외국소설은 연 1500~2600종 (장강명, <<당선 합격 계급>>, p343)이 출간된다. 최소로 잡아도 소설만 2600종, 거기에 인문, 과학, 자기계발, 경제경영까지 합치면 연 출간 종수는 최소 6000종 이상이다. 이 중 단 한 달만이라도 베스트셀러 30위권에 드는 책은 얼마나 될까? 기껏해야 300-500여종의 책을 빼면(실은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는 나머지 수천종의 책은 모조리 ‘기획 실패’에 해당한다.(그래서 잘 팔리는 몇 종이 나머지를 먹여 살리는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기도 하다.) 전문적인 편집자조차 잘 해내지 못하는 일을, 출판사 편집자의 간택만을 소망하는 ‘아마추어 필자’가 얼마나 해낼 수 있을까?

요컨대, 이것은 편집자를 위한 책일 뿐이다. 편집자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신입 편집자,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1~3년차 편집자, 그리고 타 편집자의 경험담이 필요한 1인 출판사 사장님이자 편집자들, 추가로 책 카피와 씨름하는 편집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하다. 하지만 그 뿐이다. 원고를 투고하는 아마추어 필자들은 책의 조언을 따르기 어려울 것이다. 당장 ‘예상독자’를 그리는 일부터 실패할 확률이 높다. (내 생각을 말하면, 편집자의 기준이나 독자의 테이스트를 맞추겠다고 원고에 손을 대는 순간, 본래 원고의 장점은 깍여나가고 보잘것없는 원고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고로, 이 책은 신입, 1~3년차, 1인 출판사 편집자를 위한 책이고, 그들 아니면 열어볼 필요가 없는 책으로 최종견적을 낸다. 아울러 편집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한 사람에게도 알맞다. 그러나 원고투고자를 포함한 일반인의 경우는 안 읽어도 무방하다.    

이렇게 조언해도 원고를 투고하고자 하는 당신은 끝내 책을 펼쳐볼 것이다. 하여, 책이 제시하는 ‘편집자가 찾는 원고 투고자’의 기준을 인용하며 마무리한다.

“사실이 그렇다. 편집자에게 ‘숨은 신’을 만나는 기적이란 바로 그렇게 준비된 당신을, 아마추어일지언정 ‘전문가다운 태도’를 가진 예비 저자를 만나는 것이다.” -p70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 아닌가? “우리는 신입사원을 찾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다운 태도를 가진 경력자처럼 준비된 신입사원을 찾습니다.” 경력없는 '신입 필자'인 당신은 간택될 수 있을까? 부디 건투를 빈다.


PS : 조언을 덧붙인다. 책을 내고 싶은데, 당신의 옥고를 알아주는 출판사가 없다면, 넘의 출판사를 이용해 내 책 내려 하지 말고 자비출판 하시라. 그런 출판사가 제법 있다. 딱 500부만 찍어서 도서관에 100부 기증하고, 나머지 400부는 나눠주고 뿌리면서 추억을 만드시라.(작가 명함이 필요하신가? '작가'라고 파서 명함 만들면 된다. 얼마 안 한다.) 정말 가치가 있다면 도서관에서 읽어보고 누군가 열광하여 서평 쓸 것이다.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실망할 것 없이 추억삼아 기념하고 즐기시라. 그게 출판사마다 거듭 투고하고, 왜 나를 알아주지 않느냐며 분통을 터트리는 일보다 당신의 좋은 삶과 건강에 더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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