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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꼭지에 언급된 악의 평범성...

빵가게제빵사 2016. 1. 28. 23:31

침대에 누워 <<한나 아렌트의 말>>(한나 아렌트, 윤철희 역, 마음산책, 2016)을 읽었다.('해나 아렌트의 말'로 출간되지 않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수록된 네편의 인터뷰 중 두 편은 이미 접한 바 있고, 다른 두 편도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하나는 텍스트에서 출간된 <<이해의 에세이>>에, 다른 하나는 한길사에서 출간된<<공화국의 위기>>에 실려 있다. 물론 번역은 다르다.- 읽으면서 새삼 확인한 것은 한나 아렌트의 매력이다. 그녀의 매력은 치밀한 이론화에 있지 않다. 그녀는 당연하고 상식적인 것들을 낯설게 만들면서 적확한 논평을 바늘 찌르듯 구사한다. 가령 "이봐요... 우리의 총체적인 신화는, 또는 우리의 총체적인 전통은 악마를 타락 천사로 봐요. 타락 천사는 당연히 늘 천사로 남아 있는 천사보다 훨씬 더 흥미로워요. 후자는 우리에게 좋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지 않으니까요. 달리 말해 악惡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특히, 그 자체만으로도 진정한 깊이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장하는 역할을 수행했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철학에서도 동일한 상황을 보게 돼요. '부정(the negative)이야말로 역사를 추동하는 유일한 존재다'와 같은 상황을요. 우리는 이 아이디어를 대단히 멀리까지 논의해 나갈 수 있어요. 결과적으로, 우리가 누군가를 악마로 묘사한다면 우린 스스로를 흥미로운 존재로 보이게끔 만들 뿐 아니라, 남들은 갖지 못한 깊이를 우리 자신에게 몰래 부여할 수 있어요. 그러지 못하는 이들은 지나치게 얄팍한 사람들이라서 가스실에서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지 못해요." 같은 구절은 어떤가? (비뚤어진 예를 들어본다면 박근혜를 떠올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알기론 야당만이 악마화한다. 희극적인건 그걸 통해서도 깊이를 획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녀에게는 깊이라는 게 없으니까.) 늘 비판받는 바지만, 아렌트는 '판단' 개념을 너무 신비화하고 미학화한다. '보이지 않는 손' 수준이라 어떤 이론이나 비판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론의 입장에서 보면 지적 게으름이다. 체계도 없고, 정교함도 없다. 아렌트는 B급 사상가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의 책이 불만없이 읽히는 소이연은 이런 것 때문이리라.

서평은 나중에 쓰고(분량이 나올 것 같지 않지만), 눈에 띄는 한 구절만 옮겨놓는다. 내가 책을 받으며 무척 기대했던 것은 두 번째 인터뷰로서, 아렌트와 요하임 페스트와의 대화다.  <<히틀러 평전>>, <<히틀러 최후의 14일>>의 바로 그 요하임 페스트다. 그러나 기대에 못 미쳤다. 요하임 페스트는 매우 상식적인 질문만을 던졌고, 아렌트도 상식적인 답변만 했다. 진지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그러나 히틀러와 제 3 제국에 대한 깊이있는 질문도 논평도 없었다. 요하임 페스트는 철학적 저널리즘에 가까운 <<전체주의의 기원>>을 보고 세부적인 질문을 자제했을지 모른다. 멀리서 찾아온 인터뷰이를 난감하게 만들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요컨데, 요하임 페스트는 역사가로서 아렌트와는 초점이 달랐을 수 있다. 대화를 보면 아렌트도 그런 점을 의식하는 듯 싶고, 궁극적으로 서로를 배려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옮겨 오려는 것은 "악의 평범성"을 부연한 부분이다. 우선 아렌트의 말부터 들어보자.

"자 오해 중 하나는 이거에요. 사람들은 평범한 것은 아주 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은... 내가 말하려던 바는 그게 아니었어요. 나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아이히만이 있고, 우리 각자는 아이히만과 같은 측면을 갖고 있다는 말을 하려던 게 절대 아니에요. 내가 하려던 말은 오히려 그 반대에요! 나는 내가 누군가를 꾸짖으면 그들이 내가 들어본 적도 없는, 그래서 전혀 흔하지 않은 말을 한는 모습을 완벽하게 상상할 수 있어요. 그러면 나는 "너무 평범해"(진부하다는 뜻도 있다) 하고 말해요. 아니면 "별로 안 좋아"하고 말하거나요. 그게 내가 말하려던 뜻이에요. 평범성은 정말로 간과할 수 없는 현상이었어요. 그 현상은 우리가 듣고 또 들었던, 솔직하게 말해서 믿기 힘든 클리셰와 표현 방식들에서 저절로 모습을 드러냈어요. 평범성으로 뜻하려던 바를 설명해 줄 이야기를 해 드리죠. 예루살렘에서 나는 에른스트 윙거가 언제가 들려주었지만 한동안 잊고 있는 이야기를 떠올렸어요.

전쟁중에 에른스트 윙거는 포메라니아 아니면 메클렌부르크 소작농 몇 명을 우연히 만났어요. 그런데 그 소작농 중 한 명은 러시아인 포로들을 포로수용소로부터 넘겨받아 자기 집에 거둔 사람이었어요. 당연히 그 포로들은 쫄쫄 굶고 있었죠. 러시아인 전쟁 포로들이 이 나라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는 당신도 알 거예요. 소작농은 윙거에게 말했어요. "글쎄, 그놈들은 인간 이하입니다. 소하고 다를 바가 없단 말이오! 그건 쉽게 알 수 있어요. 그놈들은 돼지 먹이를 먹어치우니까요." 윙거는 이 이야기에 이런 코멘트를 했어요. "독일인들은 때때로 악마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표현은 뭔가 악마적인 것을 뜻한 게 아니었어요. 봐요, 이 이야기에는 뭔가 터무니없이 멍청한 게 있어요. 멍청한 이야기라는 말이에요. 그 소작농은 굶주린 사람은 누구나 그런 짓을 하리라는 걸 알지 못해요. 그 입장에서는 누구라도 그런 식으로 행동할 텐데요. 이 멍청함에는 정말로 터무니없는 게 있어요. ... 아이히만은 완벽하게 지적이었지만 이 측면에서는 멍청했어요. 너무도 터무니없이 멍청한 사람이었어요. 내가 평범성이라는 말로 뜻하려던 게 바로 그거에요. 그 사람들 행동에 심오한 의미는 하나도 없어요. 악마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고요! 남들이 무슨 일이 겪는지 상상하길 꺼리는 단순한 심리만 있을 뿐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p82~85)

아렌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악이 심오하지 않다는 것이다. 타인을 절멸시킬 악이 시행될 때, 우리는 깊이를 잴 수 없는 어둠과 심연이 있으리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다. 타인을 절멸시킬 악은 '평범한 멍청함과 악의' 위에서 성립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왕따를 당하던 어떤 학생이 자살한 사건을 가정하자. 학생의 죽음을 두고 다른 학생들을 청취하는 상황도 가정하자. 이때 청취자는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를테면, "본래 이상한 애인데다 도와주려고 해도 거부했기 때문에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그 애가 내 펜을 빌려갔다가 펜에 이상한 콧물 같은 걸 묻혀 돌려줬다. 휴지로 닦아도 이상한 자국이 남아 무척 속상했는데, 나에게 단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었다. 그 일 이후 전혀 상종하고 싶지 않아 침묵하고 있었다" 같은 예상 밖의 대답을 듣게 된다. 이것이 왜 예상 외의 답변인가? 청취자는 어떤 식으로든 학생을 자살로 몰고 갈 심오한 악의나 복잡한 인과관계를 예상한다. 그러나 듣게 되는 대답은 지극히 평범한 미움과 불만, 사적인 이유들의 나열이다. 아이들 중 그 누구도 그 학생을 죽이자고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왕따시키자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 나이대의 학생들이 느끼는 아주 진부하고 평범한 이유로 그 학생을 가까이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따는 시작되었고, 학생을 절망으로 몰고갔으며, 자살하게 만들었다. 아무도 죽이자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은 죽이고야 말았다. 이 이율배반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아렌트는 그 근원에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은 것, 타인의 입장에 서서 그가 어떻게 느낄지를 상상하지 않는 고의적 배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본다. 이것이 악의 평범성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아이히만이 아니다. 우리 중 몇몇 사람만이 아이히만이 된다. 그는 부정성의 깊이와 아우라를 갖지 않는다. 깊은 감정의 골도 지니고 있지 않다. 오직 '상대의 입장을 상상할 수 없고, 상상하려 하지 않는' 덜 떨어지고 멍청한 악의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악의 평범성은 인간이 가진 보편적이자 무의식적인 속성으로 묘사되지 말아야 한다.

<<한나 아렌트의 말>>은 작은 소품이다. 아렌트 독자에게는 의외의 선물이지만, 관계없는 독자들은 피하는게 좋다. 물론 나에게는 기쁜 새해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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