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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 시대의 정치

빵가게제빵사 2016. 10. 8. 23:43

헬레니즘 시대의 정치.(2)

희랍에서 생성된 정치가 공동의 관심사에 대한 적극적 관여였다면 헬레니즘 시대의 정치는 정치가 통치로, 시민의 참여가 복종으로 변질되는 역사적 굴곡을 보여준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고전 정치사상의 실종이다. 이는 폴리스를 배경으로 하는 정치사상이 제국의 확장된 공간에서 적응력을 상실한 것이 이유였다. 이 시대의 특징을 살펴보자.

(희랍의 자살로 불리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아테나이와 스파르타를 크게 약화시켰고, 도시 국가 전체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 틈을 타 북쪽 지역에 위치한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와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는 희랍지역을 점령, 나아가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다. 이 때를 헬레니즘 시대로 부른다. 이 시기에 희랍의 정치와 고전 정치사상은 심각한 위험을 맞이한다.

마케도니아 제국이 건설되자 폴리스는 그 밑에 깔리게 되었다. 그러자 더 이상 폴리스가 정치의 중심일 수 없다는 사실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거대 제국의 운명은 최상부에 존재하는 몇 명의 권력자에 의해 결정되지, 폴리스 시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공적 참여가 사라진 것이다. 이는 정치의 실종을 뜻한다. 그러나 오직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제국의 한 부분으로 전락한 폴리스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는데, 시민의 지위와 형상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고전적 정치가 보장했던 희랍의 전통적 시민상은 공적 참여와 복종, 명예로운 행위로 타인의 인정을 얻는 영웅(완전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공적 권리를 박탈당한 시민은 더 이상 시민이 아니었다. 즉 저 멀리 떨어진 권력자의 명령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고 복종하는 신민에 불과해진 것이다.

물론 정치를 회복하고 시민됨을 되찾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알렉산드로스 사망 직후 아테나이의 정치가 데모스테네스와 히페리데스는 과감하게 반란을 일으켰고, 열정적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크라논 전투에서 패배한 후 히페리데스는 처형당했고, 데모스테네스는 자살했다. 그 후 아테나이 정체는 돈이 많은 부자들만 참여할 수 있는 귀족정으로 변화되었다. 2만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시민권을 박탈당했고, (그나마 남아있던) 참여의 권리마저 잃어버렸다. 대부분이 분노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반란에 반대했던 부유층은 ‘폴리스의 시민'으로 남았지만, 나머지는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야 했다. 아테나이에서 꽃피웠던 민주정은 사라졌고, 정치는 극소수를 위한 잔치가 되고 말았다. 아테나이의 사람들에게 남아있는 건 권력을 잃고 세금을 꼬박꼬박 바치며 굽신거리는 신민의 삶 뿐이었다.

문제는 왜 이런 변화를 거치면서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확립한 고전 정치사상이 변화와 변용을 거치지 못했는가다. 다르게 말하면 왜 정치사상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했는가다.이는 고전 정치사상의 내부적 성격에 이유가 있었다.

앞에서 보았듯 희랍인들에게 정치는 '폴리스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하는 것'을 뜻했다. 즉 우리가 현재 상상하는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의 분리 또는 '정치적인 것'과 '정치적이지 않은 것'의 산뜻한 분리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고대의 정치사상은 오로지 폴리스를 기반으로 건설된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상적 도시의 크기와 적정한 인구를 설정한 것, 플라톤이 엄격한 산아제한을 제시한 것. 그리고 부, 상업, 식민지 팽창등에 엄격한 규정을 마련한 것은 고전 정치사상이 폴리스와 폴리스의 삶을 떠나서는 상상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음을 증명한다. 다시 말해 정치는 통치로 변질되어 제국 내 어딘가에서 실행될 수도 있었으나, 그것은 구성원의 '좋은 삶'과는 무관했다. 논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격변하는 현실은 변질된 사상을 낳았다. 새로 나타난 에피쿠로스 철학은 고전 정치사상에서 보면 반동에 가깝다. 이를테면, 에피쿠로스의 다음과 같은 말을 보라. “우리는 일과 정치라는 감옥에서 자신을 해방시켜야 한다.” 즉, 제국의 건설과 반란의 실패, 폴리스의 해체와 시민의 삶을 박탈당한 일련의 과정은 인간의 운명에 대한 우주적 무관심의 증거였다. 만약 신들이 인간에게 관심이 있었다면, 신들은 폴리스가 해체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폴리스와 완전한 인간의 삶(시민의 삶)이 신에게 버림받았다면, 결론은 한가지였다. 얼마만큼 가혹하고 잔인한가에 관계없이 인간의 삶은 개인사에 불과한 것이었다. 따라서 비극에 가까운 운명을 한탄할 이유가 없었다. 개인은 개인일 따름이며, 전체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괴로움을 최대한 줄이며 개인사를 고통없이 이끄는 것. 그것만이 삶의 유일한 가치였다. 이런 입장이 공동의 관심사에 대한 관여와 헌신을 바탕으로 했던 고전 정치사상과 얼마나 다른지 보라. 고전 정치사상은 단절된 것이다.

그러나 (에피쿠로스 철학이 보여주는) 정치사상의 과격한 단절은 계속될 수 없었으며 스토아 철학은 고민을 떠안았다. 그러나 로마시대까지 이어지는 정치사상은 헬레니즘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으며 지리멸렬한 상황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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