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시야는 사적인 영역으로 축소된 것 같다. 큰 이야기들은 허황되고 정밀성을 결여하거나 의도에 의해 왜곡된 것처럼 느껴진다.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를 꾸밈없고 소소하게 살아가는 일이며, 그것을 가능하게 할 ‘일상’은 우리가 지켜야할 궁극의 가치로 보인다. 정치는 스쳐 지나가는 것이며 가능한 범위 내에서 참여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올바르다고 여겨진다. 나 역시 그러한 삶의 방식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혹은 그러한 시야가 허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 때가 있다. 그런 회의를 가지고 펼쳐보게 된 것이 (데틀레프 포이케르트, , 김학이 역, 개마고원, 2003)다. 나치시대를 지배했던 일상의 느낌과 반응을 기술한..
세상에는 다층적인 책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질적 수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단순한 밀도, 즉 양으로 무리 없이 달성되기도 한다. 예컨대 중세의 기이한 풍습을 다루면서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지리학을 동원하는 문화사 책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책은 분과 간 경계를 넘나들고, 내용은 이질적인 것을 가로지르며, 주제는 반복적으로 변주된다. 고전의 깊이와 폭은 갖추고 있지 않아도 읽을 때마다 인상이 달라지고 초점은 변경된다. 얼마 전 읽은 (다카하시 도시오, 김재원, 정수윤, 최혜수 역, 도서출판 b, 2012)은 그런 책이었다. 여러 번 반복해 읽으며 책이 가진 다른 층위를 발견하는 일은 즐거웠다.은 와세다 대학 문학부에서 개설된 ‘호러론’ 강의의 2007년 버전을 활자화한 것이다. 교양강좌이면..
을 한 남자의 소박한 자연 귀향기로 생각하여 집어든 독자들은 실망하기 마련이다. 오히려 두 가지 면에서 놀라기 쉬운데, 하나는 저자가 책 전체에 걸쳐 전투적인 자세를 견지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다스럽기 이를데 없다는 점이다. 책을 이해하는데 있어 걸림돌이 되는 것은 전자가 아닌 후자다. 이 당대(19세기)의 문명을 비판하고 대안적 삶을 제시하려는 급진적인 팸플릿이라는 점, 그리고 이것을 눈치채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후자의 문제는 더욱 두드러진다. 거칠게 말하자면, 은 소로우가 월든 호수가에서 어슬렁거리며 본 것, 들은 것, 생각한 것을 맥락없이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분량으로 치면 전체의 4/5에 해당하며, 각 장에 붙인 제목을 제외하면 통일성도 없다. 그러나 그 누구..
“...어떤 책이 나에게 어려운 까닭은 결국 내가 그 책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적어도 지금은 내가 그 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컨대 나에게 어려운 책은 불량한 책이거나 불필요한 책이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내가 필요로 하고 잘 쓰인 책이라면 애초에 어려울 수 없다. 그러므로 ‘어려운 책을 잘 이해하는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필요한 모든 책을 잘 이해하는 방법‘만 있는 것이다.” -가토 슈이치, , p196. 사월의 책, 2014- 을 읽었다. 독서술 책으로는 출간이 늦은 편인데 원작이 1962년에 쓰인 것을 보아도 그렇고, 알맹이 없이 불어댄 인문학 열풍(?)이 끝나가는 작년에 나온 걸 보아도 그렇다. 읽어본 독자들은 공감하겠지만, 이 책은 독서술, 서지..
“더 나아가 살아 있는 실체는 오로지 그것이 자기 자신을 정립하는 운동이라거나 자기의 타자화와 자기 자신을 매개하는 것인 한에서만 참으로 주체인, 또는 같은 말이지만, 참으로 현실적인 존재이다. 주체로서의 살아있는 실체는 단순한 부정성이며, 바로 그 점을 통해 단순한 것의 양분화나 대립시키는 이중화이거니와, 그것은 또 다시 이러한 무관심한 상이성과 그 상이성의 대립의 부정이기도 하다. 오로지 이렇듯 스스로를 회복하는 동등성 또는 타자존재 속에서의 자기 내 반성 - 즉 근원적 통일 그 자체나 직접적 통일 그 자체가 아닌 것 - 이야말로 참된 것이다.” 이 끔찍한 문장은 헤겔의 것이다. 헤겔의 모든 문장이 저런식은 아니지만 은 유난하다. 하여 독자는 다음과 같이 묻게 된다. ‘ 부정성’, ‘단순한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