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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긴 예찬과 감동의 언어...

빵가게제빵사 2022. 12. 4. 00:19
 

희랍을 다룬 책을 몇 권 주문하면서 이디스 해밀턴의 책도 추가했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절판된지 제법 되었던 책이 다시 나왔길래, 출판사가 재계약해 다시 낼만큼 눈여겨볼만한 부분이 있을지 궁금해서였다. 한편으로는 입문서로 자주 권해지는 키토를 대신할만한 책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엊그제 도착해서 오늘 밤에 찬찬히 넘겨보았다.

 

결론부터 말해, 다시 나오지 않는 게 좋을 뻔했다. 책이 나쁜 건 아니다. 그러나 고전학 책은 (서구에서) 당대 최고의 저자라면 누구나 욕심내는 영역이고, 본인의 서술을 첨가하려면 식은땀을 흘려야 하는 영역이다. 다시 말해, 이 영역에서 책을 내는 저자라면 수준급의 저작과 비교평가를 감수해야만 한다. 그렇게 보면 평정한 책이다. 지성사/문화사 분야에서는 키토의 책보다 떨어지고, 사유의 깊이에서는 콘퍼드에 근접하지 못하며, 고전 저자들을 탐구에서는 앙드레 보나르의 풍요로움에 접근하지 못한다. 비슷한 분량의 자클린 로미이의 책과 비교해보아도 긍정적인 평을 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이유가 저자의 역량부족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저자가 키토, 콘퍼드, 앙드레 보나르가 고대 희랍에 느꼈던 희열을 동일한 강도로 느꼈다는 것에, 그걸 그대로 언어화하려 했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글쓰기란 일종의 타협이다. 책이란 더 그렇다. 고대 희랍이 던지는 사유의 깊이를 남김없이 체험했던, 단순함과 균형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던, 그 감동을 글로 옮기려면 타협이 불가피하다. , 진리의 순간에 충만했던 날카로움과 풍요로움은 언어로 번역되면서 깍여나가고 축소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천상의 지고함은 지상의 천박함과 타협해야 하고, 인간의 평범한 언어로 낮춰져야 한다. 이데아의 순간이 던진 충만함을 그대로 전달하겠다고 수식어와 감동의 어휘로 뒤범벅해 서술한다 해도 지나친 번잡함으로 남을 뿐이다. 물론 체험의 진실성은 의심되지 않는다. 다만 굳이 복간하여 다시 나와야 하는지 의심될 따름이다.

 

문화사로는 키토의 책에 못 미치고, 저자를 탐구하는 면에서는 앙드레 보나르보다 못하다. 사유의 깊이나 사색의 풍요로움에서는 콘퍼드나 자클린 로미이에 견주기 어렵다. 이 분야의 입문서로 가장 좋은 책은 여전히 키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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