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Papers

신랄한 마크릴라의 푸코 논평...

빵가게제빵사 2018. 3. 3. 21:58

자기수양에 관한 글을 찾아보다가, 생각이 나서 <<분별없는 열정>>의 미셸 푸코편(p164~184)을 뒤적뒤척했다. 새삼 느끼는 것은 저자 마크릴라의 신랄함인데, <니체의 프랑스인 제자 : 미셸 푸코>는 유난하다. 다른 에세이는 말할 것도 없고, 가장 강렬한 데리다편과 비교해도 비판의 어조가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무엇이 이 세기의 사상가를 신랄하게 평하도록 만든 걸까. 좀 의아하기도 하다.

 

외형적으로, <니체의 프랑스인 제자 : 미셸 푸코>는 제임스 밀러의 <<미셸 푸코의 수난>>에 대한 독후감이다. 하지만, 저자 마크 릴라는 제임스 밀러가 그린 푸코의 모습에 자신의 견해를 첨가하여 좀 더 신랄한 평을 내리고 있다. 이를테면, 제임스 밀러가 그린 푸코가 "자신이 이해한 행복을 고집스럽게 추구한 고귀하고 독립된 정신의 소유자"이자, "관습에 도전해야 한다는 지적인 강박에 사로잡혀 급기야 죽음과 위험한 춤을 추"(p165~166)는 모습이었다면, 마크릴라가 비판적 논평을 덧붙여 그려내는 푸코는 "자신의 어두운 망상을 당대의 정치에 섞어버리는 무책임한 니체주의자"(p177)의 초상이다. 더 간단하게 (그리고 더 거칠게) 요약하자면, 상처받은 동성애자로 사회에 원한을 품은 채, 자신의 철학적 개념을 도구로 사회를 전복시키려는 어두운 희망에 사로잡혀 정치에 뛰어드는 한 명민한 지식인의 모습, 정도다. 지식인의 섯부른 정치참여를 비판하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중 하나니, 비판적인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사상가(하이데거, 슈미트, 코제브, 벤야민, 데리다)를 다룬 에세이와 비교하면, 푸코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유난히 신랄하지 않나 싶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정치철학자인 마크릴라는 푸코의 분석 또는 비판이 정치이론으로는 매우 불투명하거나 또는 진부하다고 여기는게 아닌가 싶다. 가령 푸코의 권력이나 통치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 푸코의 권력은 권력자가 행하는 강권력이라기보단, 물리적인 힘인 작용/반작용을 사회적인 단위로 옮겨놓은 아이디어다. 권력은 무언가를 하기 위한(생산하기 위한) 힘으로써, 어떤 원천이기도 하고 어떤 실천이기도 한데, 각 개인 단위로 존재하기도 하고 집단 단위로 존재하기도 하면서 각각 섬처럼 분산되어 있다. 힘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작용 반작용을 주고 받는데, 어떤 (인지적, 담론적, 사회적, 경제적) 변화가 일어났을때, 특정한 방향으로 응집하고 새로 관계지으면서 사회적 효과 또는 실천을 만들어낸다. 예컨데, A) 기회가 똑같이 주어지고 평가가 치우치지 않으면 공정하다. G) 노력은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량에 의해 평가되며 측정 가능하다. L) 인간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가꾸고 만들어가야 한다 같은 상이하고 직접 연관되지 않는 주장/실천/힘이 자기관리에 따라 기회를 제공하는 자유주의적 변화를 만나면 ' 어떤 직무에 대한 역량을 기르기 위해 매일같이 반복 노력하는 주체에게 정규직 일자리를 주는 것이 공정하다' 같은 판단윤리와 기준이 생성된다. 다시말해 권력은 본질적으로 배치의 효과이자, 기존의 힘들이 형성한 관계를 다르게 배치하고, 특정한 방향으로 응집되게 함으로써 일련의 변화를 생성하는 효과이기도 하다. 미시적이고 심리적인 습관/관습에서부터 거시적 정책에 이르기까지 권력은 무한한 관계망 속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부딪치며 변화하고 생성하며 의미를 부여한다. 문제는 이것이 너무 거대해서 정교하게 파악하기는 커녕 묘사하기조차 어렵다는데 있다. 게다가 권력이 무의식적인 미시적 영역부터 국가정책인 거시적 영역까지 걸쳐 있고, 무한한 힘들의 관계망 속에서 창출되는 것이라면 저항의 단초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알 수 없고, 설사 저항을 한다고 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확증할 수 없다는 한계마저 만든다. 우리가 정치를 관습/제도/법을 두고 각각의 단위가 실천하는 투쟁과 조절의 총체로 이해한다면, 푸코의 이론은 정치를 통제 불가능한 영역으로 밀어넣고, (정치를 이론적으로 탐색하는) 정치이론을 불투명한 안개의 늪으로 던져버리는 셈이다.

 

푸코의 권력이론이 너무 추상적이고 불투명하다는 비판은 여러차례 제기된 바 있다. 푸코가 이를 의식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마크릴라는 이 부분에서도 아니라고 잘라 이야기한다. 마크릴라는 푸코가 자신의 정치이론을 가다듬어 정치이론에 기여하려는 동기에서가 아니라, 개인의 사생활/취향이 변했기 때문에 후기 이론으로 이행했을 뿐이라고 평가절하한다.), 푸코는 후기에 통치성 개념을 제시한다. 말 그대로 통치는 어떤 행위가 이루어지도록 제약/작용을 가하는 것이다. 현대의 통치는 사목적 통치다. 비유하자면, 양순한 신도를 인도하는 신부님이 행사하는 권능 같은 것이다. 신도들은 원죄를 지니고 있고, 매 순간 죄를 짓고 있으므로, 신부님을 정기적으로 만나 자신의 죄를 고해해야 하고, 신부님의 인도에 따라 자신을 '마음으로부터(이를테면 타인의 재물을 탐하는 마음 자체를 금지하는) 통제해야'만 자신의 생을 유지할 수 있다. 당연히 이런 통치는 이끄는자, 즉 통치자/통치권력을 끊임없이 필요로 하며, 통치 또는 권력을 떠나서는 생을 유지하지 못한다. 생명관리정치를 접합시킨 이 새로운 개념은 권력이론의 좀 더 구체적인 모습이다. 여기에 푸코는 현대의 통치에 대항할 단위를 제시한다. 자기배려를 기반으로 자신을 통치하는 고대의 주체가 그것이다. 푸코가 이야기하는 고대인은 '자기배려'를 통해 자기통치를 행하는 주체다. 자기배려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자기배려란 일종의 자기수양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닥칠 역경을 무난하게 넘기기 위해 어떤 수단들을 강구하는 것이며, 자신의 본질을 찾아 그에 걸맞는 행위 원칙들을 준수하는 것이다. 자기배려는 자기성장과 관계가 없고, 사회가 요구하는 어떤 기준에 맞추기 위해 실행하는 자기계발도 아니다. 이를테면, 고대의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들은 역경을 피함으로써 행복을 찾고,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자기를 발견'하여 이를 삶으로 통합하고자 했다. 즉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자신이 하는 행위를 평가해보는 것이다.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지금 하고 싶은 이 행동을 할 것인가? 내가 지금 갖고 싶은 저것이 내일 죽는다고 해도 정말 욕망하고 싶은 것일까? 같은 질문을 던져,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 지향하는 바를 발견하여 자신의 행위 준칙으로 삼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발명한다. 이런 주체에게는 사목적 권력 즉 신부님이 필요하지 않다. 역경에 대비하기 위해 담론을 배우고 수련하며, 자기를 발견할 기회를 얻기위해 스승이나 공동체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들에 의존하지 않으며, 최종적으로는 자신이 발견한 온전한 자기만 남는다. 이들은 사목 권력이 제시하는 바와 다르게 자신을 통치한다. 생을 위해 그들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각각의 차이가 유지되는 자기배려의 주체들이 늘어날 때, 사목권력이 만들어낸 지형도는 흔들릴 수 밖에 없고, 저항의 단초와 방향이 가시화될 것이다.

 

그럴듯한 이야기다. 푸코의 이야기를 들으면, 통치에 저항하는 재치있고 유쾌한 주체들을 상상할 수 있지만, 넓게 보아, 이 주체는 자신의 욕망을 에토스의 중심에 놓고 기존의 사회와 투쟁하는 헤겔의 비천한 의식과 그랜드 캐년 공터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대마초를 피우며 기타를 치는 히피적 자유주의자 그 사이 어디쯤에 존재한다고 할 수 밖에는 없다. 이 주체의 투쟁은 좀 더 유쾌하고 엉뚱할 수는 있겠지만, 기존의 정치적 틀 안에서 이루어지든지 아니면 급진적 반문화운동 이상은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푸코의 권력 개념이 가진 태생적 모호성을 구체화시키지 못하는 한, 그들의 투쟁 역시 기존의 방식과 다를 게 없다. 정치철학자의 입장에서보면 흥미롭게 평가할 부분은 거의없다고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오랜만에 <<분별없는 열정>>을 다시 꺼내 읽다가 그만 감당못할 이야기를 늘어놓고야 말았다. (도대체 얼마나 길게 쓴 거신가) 푸코에 대한 마크릴라의 비판이 너무 신랄해서 그 이유를 생각해보다가 푸코에 대한 무엄한 소리를 늘어놓고야 말았는데, 어떻게 수습이 안 되니 여기서 무책임하게 마무리하자. 그나저나 마크릴라의 신작을 번역본으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러가지 이유에서 나는 그의 글을 무척 좋아한다.

 


 

 

 

 

'Pape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치적 삶에 대한 짧은 메모  (0) 2018.03.08
안티크리스트를 다시 읽으며 느끼는 잡감...  (0) 2018.03.07
헬레니즘 시대의 정치  (0) 2016.10.08
희랍의 정치  (0) 2016.10.08
한 꼭지에 언급된 악의 평범성...  (0) 2016.01.28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TAG
more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