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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비판을 이해하는 간단한 방법 중 하나는(물론 좋은 방법은 아닐 것이다) 음모론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즉 어떤 규범, 도덕규칙이 그 자체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목적과 이익에 봉사하기 위해 조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우리가 따르는 예절이나 관습, 도덕을 따지고 올라가다보면 그 자체로는 근거를 댈 수 없는 최초 지점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가령, 자식은 부모를 살해하면 안 된다, 는 규범을 생각해보자. 왜 그럴까? 부모는 자식을 길러주고 사랑해주는 존재인데, 그런 이를 죽인다는 건 패륜이 아니냐는 답은 부족하다.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들도 존재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니까. 문제는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를 자식이 살해하면 안된다' 라는 조건을 붙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꺼꾸로 물어보았을때도 여전히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자식이 죽여도 괜찮다는 것인가?) 이런 난점을 해결하는 보편적 방법 중 하나가 신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고 살해하지 말라고 신께서 명령하셨고, 우리는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감각에도 잘 맞는다. 부모 살해범, 또는 자식 살해범에게 느끼는 우리의 감각은 단순히 법을 어겼다는 수준의 것이 아니며, 본능적인 혐오감부터 표출하게 된다. 이는 인위적 규범 이상의 것이 작용한다는 느낌을 주며, 이런 느낌을 '본래적인 것' 또는 '신의 명령'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과학이 발전하고, 세계는 물질과 에너지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영혼은 없고, 의식은 뇌라는 물질의 작용이며, 인간 역시 개나 소와 동일한 동물에 불과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인간은 신이 창조한 위대한 창조물이 아니고 그저 진화의 산물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신이 보증했던 인간의 모든 도덕이나 예절, 규약은 어떻게 되는 걸까? 니체의 비판은 이런 것이다. 만약 초월적 존재가 제도, 관습, 법, 도덕의 근본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은 누군가가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고, 누군가가 만들었다면, 분명 그 누군가의 '목적'이나 '이익'에 종사하리라.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종사하는가? 이걸 추적하는 것이 계보학이다. 니체는 가치 전도를 예로 든다. 본래 '좋음'은 강한 것, 능동적인 것, 지배하는 것을 부르는 속성이었고, '나쁨'은 약한 것, 수동적인 것, 지배당하는 것을 부르는 속성이었는데, 지배당한 무리의 원한과 기독교가 결합하여 강하고 지배하는 것을 '나쁜' 것으로, 약하고 참고 지배당하는 것을 '좋음'으로 전도했다는 것이다. 결국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인내, 선함, 자비 같은 것은 강자를 질시하는 약자들에게 기쁨을 주고, 사제들에게 권력과 이익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은 도덕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목적에 복무하는 도구이며, 도덕을 따르는 자들에게 씌워진 굴레이자 통제다. 그것을 간파하고 들추어내는 것이 니체의 비판이다.


문화나 도덕, 또는 가치체계가 누군가의 이익과 목적에 봉사한다는 발상, 우리가 교묘하게 짜여져 있는 인식틀 속에 빠져 본래의 자신으로부터 박탈되어 있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소외'로 이어진다. 그런 문화가 없었다면, 그런 도덕이 없었다면, 그런 가치체계가 없었다면, 우리는 그 무엇에도 오염되지 않은 채 '자연스런 자기 자신으로 살아갔을 것'이라는 발상은 자연스럽고 통제에 저항하는 강력한 원동력이 될 수 있겠지만, 그런 도덕, 문화, 가치를 걷어내면 정말 우리는 그 무엇에도 오염되지 않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양파 껍질 벗겨내듯 그 모든 것을 걷어내면 무엇에도 오염되지 않은 본래의 핵이 있다는게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인가?


문화란 특정한 관습/제도/법의 집합체이며, 관습/제도/법은 각자의 이익과 가치관이 중층적으로 충돌하여 변화,조절되는 장일뿐, 거기에 어떤 편집증 환자가 떠올릴 법한 음모는 없다는 주장에 대체로 동의하게 된 지금, 한참 전 니체를 읽으며 전율했던 그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본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는 <<안티크리스트>>는(예전에는 청하판으로 읽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훌륭한 번역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고, 맥빠진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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