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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s

잡담, <<니코마코스 윤리학>>

빵가게제빵사 2018. 3. 17. 23:59

- 김재홍 번역본 <<정치학>> 에 감탄하고 나서, 읽고 있는 책은 천병희 번역본 <<니코마코스 윤리학>>. 어떻게 그런 식으로 건너뛸 수 있는지 스스로도 답할 수 없으나, 근본없이 읽는 것이 딜레탕트의 소명(?)이니, 그냥 그러려니 한다. 각설하고, <<니코마코스 윤리학>>으로 돌아가면, 김재홍 선생이 참여한 공역본과, 천병희 번역본 두 종이 있는데(일단 원전 번역은 그렇다.) 그냥 읽기는 천병희 번역본이 훨씬 수월하다. 교양으로 읽는 거라면 천병희 번역본을 애정해도 좋지 않을까.


-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신기한 책이다. 세상의 어느 책을 보아도,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선 이렇게 살면 된다!" 라고 확정하는 책은 별로 없다. 좋은 정치를 위해서, 인민의 복지를 위해서, 올바른 통치를 위해서, 신앙을 위해서, 세상사가 어떤지 논평하는 등등의 주제를 다루면서 곁가지로 다루는 경우는 있지만, 순전히 "좋은 삶"이라는 주제 하나로만 이루어진 책은 보기 드물다.(아리스토텔레스를 제외하면 헬레니즘 철학 저작들이 유일한 예외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좋은 삶'이란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꼭 구해둘만한 책이다. 이 책 한 권에 좋은 삶의 모든 기예가 담겨 있다는데, 이런 경제적인 선택을 거부할 사람은 누구인가? 딱딱하고 지루한(무엄하게도 이 용어를 쓰고 싶다) 내용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거쳐 사랑받는 건 그런 까닭일게다. (물론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시면 안된다.)


- <<윤리학>>에 나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발상은 간단하다. 1) 세상에는 좋은 삶으로 귀결되는 객관적 '미덕'들이 있으며, 2)미덕은 행위와 관련되고, 3) 행위는 주위의 평판에 의해 검증 가능하다. 그러므로 훌륭한 행동을 하면 칭찬받아 명예를 얻을 것이고, 저열한 행동을 하면 비난받아 수치를 얻을 것이다. 따라서 훌륭한 삶이란, 모든 상황에서 미덕(용기, 절제, 후덕함 등)에 기반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 삶은 본인에게 좋고, 타인에게도 칭찬받는다. 그게 좋은 삶이다. 물론 우리는 여기에서 내면이야 어째든 남들에게 훌륭해 보이는 행동을 하려고 드는 '속물'을 연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보다 똑똑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내면의 문제를 교육의 문제로 건너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는 인간이란, 행위를 통해 쾌와 불쾌를 학습할 수 있고 특정 행위를 통해 특정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는 존재다. 이를테면, 어릴때부터 늘 정의롭고 당당하게 행동하도록 훈련시키면, 정의롭게 행동할 때 즐거움을 느끼고 정의롭게 행동하지 못할 때 수치심을 느끼는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타고난 성향, 기질 따위는 중요하지 않으며, 습관을 통해 내면이 길러진다고 보는 입장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대로라면, 훌륭한 사람이란 미덕에 기반한 훌륭한 행동을 통해 쾌/불쾌를 느끼는 인간이며, 정의롭게 행동하지 않으면 불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정의롭게 행동하는, 미덕과 마음가짐과 행위가 일치하는 인간이다. 그러니까, '습관은 바로 그의 운명이다.' 디테일을 생략하면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런 삶도 좋은 삶일 수 있고, 이런 방법론에 끌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나, 아쉽게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 진정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현대인의 고민에 답해주지 않는다. 우리는 개인이 욕구하고 기쁨을 느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하며, 그것을 실현할때만 좋은 삶이 가능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미덕의 실천과는 거리가 멀다. 기질, 욕망, 사회적 영향/가치관으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의 내면이(물론, 우리는 이 내면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잘 모른다) 현대인에게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그 내면이 욕구하는 바를 어떻게 찾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좋은 삶의 기본 조건으로 간주하는 현대인들에게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비근한 예를 들자면 이런 것 아닐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공부'는 좋은 것이며, 누구에게나 칭찬받을 수 있는 덕목이고, 그 개인에게도 좋기 때문에 어릴때부터 5시간씩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면, 공부할때마다 즐거움을 느끼고 잘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학생들에게 설명하지만, 학생들은 (물론 지루함과 따분함을 느끼며) 앉아있는 5시간동안 도대체 왜 내가 이걸 하루에 5시간씩 해야 하는지, 그걸 통해 어떻게 '자아를 실현'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 하는 꼴이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위대한 고전저자지만, 그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이렇게 건너기 힘든 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다른 시대, 다른 공간에서 다른 사고 방식을 추구하며 좋은 삶을 고민했던, 그냥 읽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라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갑자기 일거리가 하명되어 그만. 다음을 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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