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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s

어떤 계열의 책들을 읽으며.

빵가게제빵사 2018. 7. 17. 16:18

어떤 계기로 특정 계열의 책들을 훑어보았다. 속류 포스트 모더니스트(쓰는 용어만 보면 속류 들뢰지언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해 보이기는 하나, 정확하게 이 사람들이 뭘 읽고 이렇게 말하는지 알 도리가 없으므로 속류 포스트 모더니스트로 묶는다)라고 분류할만한 이 사람들 책은 비슷비슷하다. 새로운 비전, 사유, 삶을 강조하는 이 책들의 핵심은 '생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아닐까.


"내가 쓴 이 글이 숨 막히는 세상에 청량한 바람 한줄기 위안이 되는 것도 좋지만, 사막을 옥토로 만들 물음의 씨앗을 품고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질문하는 글'은 '생성하는 삶'으로 이어진다." -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메멘토. 2015.


번역해보자. 글쓰기는 위안이 아니다. 글쓰기는 사막처럼 황폐해진 당신의 삶을 옥토로 바꿀 존재론적 질문을 담고 있어야 한다. 그 질문을 통해 당신은 '생성' 될 것이다. 뜻은 이렇다. 근대세계가 한정하는 가치와 공리에서 이탈하고, 다른 가치와 연결/중첩시켜 지금과는 다른 존재로 거듭나라. 여행기, 에세이, 글쓰기 강의 등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가벼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강렬한 목소리와 도취된 언어를 사용하여 '당신의 존재를 바꾸'라고 '계시'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모두 선지자며, 책을 통해 강림한다.


속류 포스트 모더니스트가 '생성'을 강조하며 계시할 수 있는 까닭은 다음의 두 가지다. 1) 반전체성을 통해 윤리적 입장을 확보하고, 2) 근대사회의 공리를 교란함으로써 내재적 혁명을 꾀하는 것. 다시 말해 하나로 집중되는 근대적 힘에서 분열되어 흩어지는 탈 근대적 힘에 윤리와 혁명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본원리는 반전체성이다. 파시즘과 전체주의로 치달은 근대적 원리에 반대하여 어떤 지점에 고착되거나 집중되지 않는 반전체성을 통해 자기 윤리와 혁명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 전략은 '무한탈주하는 주체의 생성'이다. 즉 고착화를 거부하고, 무한정 건너뛰며, 끝없이 중첩시킴으로써 변형하고 해체해버리는 주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주체들은 전체성에 반하는 행위를 통해 윤리를 획득하고 근대세계와 자본주의의 공리를 변형, 해체함으로써 혁명성을 얻는다.  


하지만 간단하게 윤리와 혁명이 확보될 수 있는 것일까? 데리다는 반전체성의 공동체가 전체성을 형성하는 오류를 범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즉 무한탈주를 감행하는 비동일성의 주체들은 '비동일성의 공동체'라는 범주로 묶이게 된다. 이는 그렇지 않는 사람들과 구분되고 비교될 수밖에 없으며, 결국 배타성이 일어나게 된다. 전체성을 반대하는 전체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해두면, 들뢰즈와 데리다는 오류를 알고 있었고 이를 비판, 한걸음 더 나아가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효과적인 이론적 돌파구였고 실천적 함의까지 가지는 것이었는지는 딜레탕트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한편, 내재적 혁명을 감동적인 어휘로 그려내었던 하트와 네그리의 <<제국>>이 발간된지 17년이 지났지만, 이런 주체들이 형성되고 근대세계와 자본주의가 교란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이유는 둘 중 하나다. 1) 물리적 존재인 인간은 체제를 변형시킬 만큼 충분히 급진적으로 탈주할 수 없다. 2) 아무리 주체들이 탈주를 감행해도 자본주의와 근대세계는 이를 수용할 만큼 적응력이 크다. (중국의 경우 공산당과 결합한 자본주의를 체제로 선택하고 있다.) 답이 무엇이든간에, 혁명의 비전은 미래의 철학으로 남겨두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리와 혁명성을 확보하고 싶다면, 논리적 모순을 최소화하고 실천적 가능성을 담보할 작업에 매진해야 한다. 그러나 속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책은 그렇지 않다. 포스트 모더니스즘의 계보에 편승하여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고, 생성을 이끌 만남, 사유, 글쓰기를 도취된 언어로 제시한다는 인상이 짙다. 그러나 그토록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야 할 이유나 의미는 무엇일까? 반전체성의 윤리와 혁명의 당위를 상실한 생성의 언어는 '전환기에 맞서 끊임없이 변화되는 1인 경영자가 되라!'는 자기계발서의 메시지와 그렇게 다른가?


전환기를 맞아 변화를 정당화하고 노골적으로 자본의 논리를 내면화시키는 자기계발서의 언어와 이들의 언어를 동급으로 취급하는 것은 공정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지점을 의심한다. 간단히 말해, 본인들의 본래 의도와 전망이 어떠했든 간에, 이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용어와 전망을 자신의 속류적인 책을 만드는 장식으로 사용한 혐의가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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