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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상에는 문재인 재기해를 둘러싼 아수라장이 펼쳐져 있고, 이병헌과 김태리의 로맨스에서 진정한 '나의 아저씨'를 발견했다는 환희(?)의 목소리가 나타나고 있는데, 나는 한가롭게도 '인문학'에 대한 아티클 몇 개를 읽고 있다. 아무려나.


지금 드는 생각은, 끝났다는 신호가 확연해진 (정체모를) '인문학'이란 걸 누군가 정리할때가 되지 않았냐는 것이다. 태동은 불분명한데(나는 수유너머 및 여러 인문학 연구 모임들이 발단이 아니었냐고 추측한다.),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로 촉발되고, 채사장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으로 끝난,(그리고 이 둘은 명실상부한 '인문학'의 승자들이다. 판매부수를 보시면 된다. 물론 50년 후에도 자기만 남을 강 철학자께서 계시긴 하죠.) 이 기묘한 유행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인문학이 유행하게 된 까닭은 여러가지다. 1)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기계발 유행으로 무언가 '공부'하는 것이 더 뛰어난 삶의 방식이라는 사고의 확산 2) 진입장벽이 높아진 취업시장 및 명퇴로 시간이 남은 사람들이 무언가 돈이 들지 않는 할 거리를 찾았던 것 3) 논술 시험의 급격한 확대와 유행으로 여러 사상과 사상가들이 익숙해짐 4) 소설시장이 시들해진 반면, 심리학 시장이 발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팔릴만한 '유행'을 찾던 출판사들의 대대적인 '바람몰이'. 5) 김대중과 노무현에 이어,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퇴행을 맞아, 우중으로 타락한 대중의 '백래쉬'에 맞서 이들을 계몽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인문학을 하나의 수단으로 삼아 지지했던 지식인층의 위기감과 지지. 대략 이런 것들이 중첩되며 일어났던 현상이라고 보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만 디테일은 자신 못한다).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건 5)의 문제다. 대중이 명백히 퇴행했으며, 이를 계몽해야 한다고 여긴 지식인들은 '촛불혁명'을 어떻게 볼까? 자발적으로 이명박과 박근혜를 뽑음으로써, 역사적 반동을 선택했던 '우중'들이 뜬금없이 '시민'으로 거듭나, 한국 헌정사에 빛나는 '탄핵'을 만들었던 사건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냐는 것이다.(세계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최근에 발표를 보면 한국은 민주주의 수준이 세계 최고에 이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만약 대중이 우중으로 타락했다면, 이명박과 박근혜 기간을 통해 이들이 어떤 원인에 의해 '계몽' 되었다고 가정해야 한다. 그런데 그 계기가 '인문학'었을까? 강 철학자를 강고히 지지하는 사람이라도, 그런 답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이지성과 채사장이라는 인문학의 두 승자가 이야기해주듯, 인문학은 '계몽'보다는 '자기계발/힐링 장사' 했다는 혐의가 짙기 때문이다.


반면, 애초에 대중은 계몽할 필요가 없을만큼 현명한 존재들 또는 위대한 시민이었다고 가정하면, 이명박 박근혜로 이행한 퇴행은 설명되지 않는다. 한편, 이 둘의 가정을 우회하여, 한국의 대중들은 그저 근대사회가 만들어낸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세속적인 사람들'일뿐, 어떤 수식어도 필요없다고 이야기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둘 중 어떤 결론을 채택하더라도, '인문학'은 아무런 '계몽' 효과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무언가를 팔아야 했던 출판계와 새로운 것을 찾은 대중들이 '인문학'이란 책과 강연을 만들고 소비한, 지극타당한 소비현상이었을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는 이야기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어느 쪽을 택하든, '인문학'은 구제불능이다. 인문학이란 계몽은 실행된 적이 없든지, 계몽된다, 계몽될 것이다, 라고 착각했다는 이야기밖에는 안된다. 물론, 그것은 진정한 인문학이 아니었다는 변명이 가능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퇴행한 우중이 왜 시민으로 거듭났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어떤 요인이 있을지 모르지만, 인문학은 그 요인이 아니다.(물론 장르 '인문학'이 진정한 인문학이 아니었다면 우중에게 접근조차 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기도 하다.) 실제로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 결론은 조금 더 심각한 질문을 제기한다. 과연 민주정체에서 계몽이란 필요한가? 하는 문제 말이다. 교양이 풍부한 시민이 많은 게 반지성적인 경박이들이 드글거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이 별 차이가 없다면 어떨까? 리처드 호프스테터는 미국의 반지성주의적 기질, 무식한 백인들의 욕설과 발언으로 가득찬 미국을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그런 반지성주의적인 대중이 드글거리는 미국은 1차 세계대전에서 이기고,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소련이라는 전체주의 체제와 경쟁해서 끝내 압도한, 역사상 전무후무한 강력한 '정치제'다. 그리고 그 정치체는 우리도 채택하고 있다. 과연 민주주의에서 교양있는 시민이 가득찰 필요가 있는 걸까? 계몽의 전망은 그토록 찬양받아야 할 가치가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미루자. 아직 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최근에 나온 데이비드 런시먼의 책이 어느정도 답이 되지 않나 싶지만, 어쨌거나.) 지금 할 수 있는 판단은 이런 것이다. 출판 장르로서의 '인문학'은 끝났다는 것. 자기계발과 철학과 역사와 문학과 고전을 마구잡이로 뒤섞는 실험(?)도 이제는 시들해졌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과도하게 씌워져 있던 가치나 의의를 벗길때도 되었다는 것. 그리니 이제 인문학을, 그 인기없고, 밥도 안되는 그걸 왜 하냐는 눈총을 받았던 인문학으로 되돌릴때가 되었다. 세상에는 그런 것을 읽고, 공부하며 기뻐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 사람들에게 인문학을 되돌리는게 어떨까. 그렇게 하더라도 인문학은 죽지는 않을 것 같으니 말이다.


3~4년전만 해도 강신주로 시끄러웠다. 인문학은 화두였다. 이제 그런 건 다 어디갔나 싶다. 이제 페미니즘과 혐오발언과 여성해방과 백래쉬와 반시민적 발언으로 시끄럽다. 유행이란게 원래 그런 것이니까 뭐라고 할 건 못 된다. 하지만, 누군가는 정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당당한 인문학자 강신주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격을 갖추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거기서 '계몽'과 '시민성'의 문제를 발견하게 될 테니까. 역사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헤겔의 말은 헤겔과 동시대인이었던 그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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