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is Pierre Althusser : 1918.10.16 ~ 1990.10.22) 알튀세르를 서술할때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그의 전기적 사실이다. 그 자신이 와 이라는 자서전을 펴냈음에도 그렇다. 왜냐하면 그의 자서전에서 사실과 의견은 명쾌하게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자서전은 혼란스럽고, 흥분과 좌절을 동시에 표현하며 종종 사실과 인상이 경계없이 뒤범벅되어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버지 대신 삼촌을 사랑했으며 자신의 아버지는 대용품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대해 끊임없이 괴로워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은 확인 불가능한 추측과 의견 또는 반응에 가까우며, 그 '사실'이 (그를 평생동안 괴롭힌) 우울증의 원인인지 혹은 그 결과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 ..
(와타나베 쇼이치, 김욱 역, 위즈덤하우스, 2011) 은 ‘지적 생활자’를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일련의 조언(정확하게는 규칙)들로 이루어져 있다. 길지만 전체를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1) 지적 정직을 지켜라.2) 지적 만족감을 찾아라. 지적 만족감을 찾기 위해 (가능하다면) 유학까지 감행해라.3) 반복해 읽어라.4) 형편이 허용하는 대로 매번 책을 사라.5) 책을 보관한 공간을 마련하라.6) 서재를 쾌적하게 유지하라. 7) 스크랩이나 메모노트를 만들지 말고, 책에다 직접 적어라.8)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기계적으로 쓰라.9) 영감이 떠올랐을 때 바로 써라.10) 배움의 자세로 20년 이상 정리노트를 만들다보면 큰 업적을 이룰 수 있다.11) 지적 생산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라.12) 고혈압 ..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시야는 사적인 영역으로 축소된 것 같다. 큰 이야기들은 허황되고 정밀성을 결여하거나 의도에 의해 왜곡된 것처럼 느껴진다.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를 꾸밈없고 소소하게 살아가는 일이며, 그것을 가능하게 할 ‘일상’은 우리가 지켜야할 궁극의 가치로 보인다. 정치는 스쳐 지나가는 것이며 가능한 범위 내에서 참여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올바르다고 여겨진다. 나 역시 그러한 삶의 방식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혹은 그러한 시야가 허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 때가 있다. 그런 회의를 가지고 펼쳐보게 된 것이 (데틀레프 포이케르트, , 김학이 역, 개마고원, 2003)다. 나치시대를 지배했던 일상의 느낌과 반응을 기술한..
세상에는 다층적인 책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질적 수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단순한 밀도, 즉 양으로 무리 없이 달성되기도 한다. 예컨대 중세의 기이한 풍습을 다루면서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지리학을 동원하는 문화사 책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책은 분과 간 경계를 넘나들고, 내용은 이질적인 것을 가로지르며, 주제는 반복적으로 변주된다. 고전의 깊이와 폭은 갖추고 있지 않아도 읽을 때마다 인상이 달라지고 초점은 변경된다. 얼마 전 읽은 (다카하시 도시오, 김재원, 정수윤, 최혜수 역, 도서출판 b, 2012)은 그런 책이었다. 여러 번 반복해 읽으며 책이 가진 다른 층위를 발견하는 일은 즐거웠다.은 와세다 대학 문학부에서 개설된 ‘호러론’ 강의의 2007년 버전을 활자화한 것이다. 교양강좌이면..
- 근대성의 총체를 모두 파악한다면, 파악하는 영혼이 절대정신(?)이 되어야 할만큼 복잡다기한 내용이겠지만 사상적으로는 단순한 이야기다. 짧게 요약한다면, 신학을 제거한 빈자리에 이성의 보편성을 기반으로 절대적 질서를 구현하려는 합리화의 경향과 루터가 발견한 개인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해체의 도구로 삼은 주체화의 경향이 혼재된 것이 근대 사상이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이 보여주는 ‘질서의 세계'와 '단절된 개인으로서 의심하고 해체하는 주체'가 보여주는 이질적 대상의 강제적 결합이라고 할까. 이는 홉스의 절대적 권력과 로크의 사유재산의 대립이기도 하고, 루소가 분열적으로 보여주는 의 일반의지와 에서 나타나는 실존주의적 루소(루소 이외에는 아무도 루소를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의 대립이기도 하다. 하지만 ..
세상에는 ‘게임비평'이란 장르도 있다. 게임 잡지는 폐간되었고 게임기자는 멸종했으며, 게이머가 아닌 유저가 소멸했음에도 장르는 남아있다. 그렇지만 불임의 장르다. 장르를 아는 이도 없지만 무엇보다 비평을 조금도 생산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그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유물이 남아있다. 박상우의 가 그렇다. 이 책에는 게임에 대한 짧은 에세이들이 연달아 쓰여 있다. 하지만 감상이 간단하지 않다. 하여 이 책의 인상을 전달하는 방법은 한 대목 골라 인용해보는 것이다. 나는 를 골랐다. 너의 세계관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던지던 시절이 있었다. 대답에 따라 스무 살을 갓 넘은 어린 청년들이 친구와 적으로 나뉘었다. 자기가 가진 세계관을 칼날처럼 갈아놓는 건 대단한 자랑거리였고 중요한 과업이..
김남우 번역본 을 읽다가 몇 가지 확인할 것이 있어서 (이수영, 동녘, 2011)을 뒤적뒤적 했다. 그러다 새삼 이 무척 괜찮은 입문서이자, (입문서로서의 질과 별도로) 아주 별볼일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의 니체 붐(?)은 새로운 니체전집이 간행된 것을 기점으로 수유+너머의 영향이 지대했고, 이들이 주도한 니체 붐에는 니체를 ‘삶의 멘토’로 불러내려는 시도가 일관되게 관철되어 있었다. 가령, “삶에 환멸을 느끼고 절망하고 있다면 니체를 권하고 싶다. 니체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겨울 속에서 겨울의 극복을, 회복기의 따뜻함을, 되돌아온 활력을 전해주는 철학적인 의사이기 때문이다.”(명랑철학, p7) 같은 구절은 어떤가?그러나 유고를 제외하고 니체가 정식 출간한 책만 살펴보더라도, 인간에 대한..
을 한 남자의 소박한 자연 귀향기로 생각하여 집어든 독자들은 실망하기 마련이다. 오히려 두 가지 면에서 놀라기 쉬운데, 하나는 저자가 책 전체에 걸쳐 전투적인 자세를 견지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다스럽기 이를데 없다는 점이다. 책을 이해하는데 있어 걸림돌이 되는 것은 전자가 아닌 후자다. 이 당대(19세기)의 문명을 비판하고 대안적 삶을 제시하려는 급진적인 팸플릿이라는 점, 그리고 이것을 눈치채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후자의 문제는 더욱 두드러진다. 거칠게 말하자면, 은 소로우가 월든 호수가에서 어슬렁거리며 본 것, 들은 것, 생각한 것을 맥락없이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분량으로 치면 전체의 4/5에 해당하며, 각 장에 붙인 제목을 제외하면 통일성도 없다. 그러나 그 누구..
“...어떤 책이 나에게 어려운 까닭은 결국 내가 그 책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적어도 지금은 내가 그 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컨대 나에게 어려운 책은 불량한 책이거나 불필요한 책이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내가 필요로 하고 잘 쓰인 책이라면 애초에 어려울 수 없다. 그러므로 ‘어려운 책을 잘 이해하는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필요한 모든 책을 잘 이해하는 방법‘만 있는 것이다.” -가토 슈이치, , p196. 사월의 책, 2014- 을 읽었다. 독서술 책으로는 출간이 늦은 편인데 원작이 1962년에 쓰인 것을 보아도 그렇고, 알맹이 없이 불어댄 인문학 열풍(?)이 끝나가는 작년에 나온 걸 보아도 그렇다. 읽어본 독자들은 공감하겠지만, 이 책은 독서술, 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