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상에는 문재인 재기해를 둘러싼 아수라장이 펼쳐져 있고, 이병헌과 김태리의 로맨스에서 진정한 '나의 아저씨'를 발견했다는 환희(?)의 목소리가 나타나고 있는데, 나는 한가롭게도 '인문학'에 대한 아티클 몇 개를 읽고 있다. 아무려나. 지금 드는 생각은, 끝났다는 신호가 확연해진 (정체모를) '인문학'이란 걸 누군가 정리할때가 되지 않았냐는 것이다. 태동은 불분명한데(나는 수유너머 및 여러 인문학 연구 모임들이 발단이 아니었냐고 추측한다.), 이지성의 로 촉발되고, 채사장의 으로 끝난,(그리고 이 둘은 명실상부한 '인문학'의 승자들이다. 판매부수를 보시면 된다. 물론 50년 후에도 자기만 남을 강 철학자께서 계시긴 하죠.) 이 기묘한 유행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인문학이..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의 민주주의도 아닌) '민주주의 자체'가 문제다, 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는데 보고 있으면 꽤나 얄밉다. 소련의 해체 이후, 역사는 끝났다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민주정)를 무지막지하게 들이대면서 자본주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려고 전세계에 고통을 강제했던 미국이, 이명박도 503도 아닌 트럼프 당선 이후에야 저런 소리를 하고 있는 걸 보면 위선도 저런 위선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부터 든다. 아무려나. 이 계보 중 근래에 소개된 저작으로 존 던의 , 를 들 수 있다. 곧바로 이어지는 책은 뜻밖에도 티머시 스나이더의 . 나치시대와 홀로코스트를 연구한 역사학자의 저작이라 그런지 두려움이 지나치다고 할까. 바이마르 공화국이 히틀러의 파시즘으로 내달았던 역사를 환기시키면서 민주주의가 지극히..
마크 릴라, , 전대호 역, 필로소픽, 2018. 6月반양장, 신국판보다 작은 사이즈, 160쪽, 14500원. 견적서를 내기 전 이 책을 읽으려는 당신에게 불온한 질문을 던져본다. 당신은 이 책을 왜 읽으려 하는가? 내 빈약한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대략 다음의 세 가지 경우일 것이다. 1) 지금 핫한 정체성 정치(노골적으로 말해 페미니즘)가 가져올 위험을 파악하고 이를 '미리' 비판하기 위해서.2) 1)과 반대로 정체성 정치를 정면으로 비판한다는 이 책을 역비판함으로써 정체성 정치(노골적으로 말해 페미니즘)를 공격하는 논의를 잠재우기 위해.3) etc. (정체성 정치가 무엇인지 왜 비판한다는 건지 궁금해서,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가 쓴 저작이라니까 얻을 게 있지 않을까 해서, 요즘에 핫하다니까 한 번 읽..
판카지 미슈라, , 강주헌 역, 열린책들 2016. 6月양장, 신국판, 총 464쪽, 22000원 제목을 보고 책을 산 독자라면 낭패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특히 분노와 폭력과 혐오발언이 난무하는 요즘의 풍경에 대해 통찰을 얻고 싶었던 당신이라면 더 그랬으리라. 이 책은 분노에 대한 르뽀가 아니다. 혐오의 심리적 원인을 탐구한 책도 아니고,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시도도 아니다. 이것은 우리시대, 즉 21세기에 시작된 전지구적 테러의 기원을 계몽주의와 그것의 반동으로 파악하고 추적하는 역사책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괜찮다. 나도 이 부분에는 밑천이 별로 없으니까. 눈 밝은 독자들은 “21세기에 시작된 전지구적 테러의 기원을 계몽주의와 그것의 반동으로 파악하고 추적”한다는 말에서 ‘지성사’라는 단어를 떠..
(주디스 리치 해리스, , 최수근 역, 이김 출판사, 2017)을 읽었다. 읽고 나서 관련 서평을 훑어보았는데, 대개가 육아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 쓴 평이한 서평이고, 심리학자나 발달심리학 관계자가 쓴 적절한 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 보기에, “양육 가설”로 지칭된 발달심리학 이론을 반박하는 이 기념비적인 책은 지금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전문성을 가진 필자에 의해 꼼꼼하게 독해되고 평가될 필요가 있다. 만약 과학이 데이터에 입각하여 이론을 검증/수정하는 활동이라면, 경우에 따라 데이터가 가설을 뒷받침하지 않으면 과감히 폐기하고 새로운 이론을 설계하는 활동이라면, 그리고 그것을 ‘정상’이라고 한다면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이 책은 양육가설이 매우 잘못된 전제 위에 세워져 있고, 어떤 데이터도 가설을..
- 어제 동네를 걷다가 어떤 할아버지가 좌판을 펼치고 헌 책을 팔고 있는 걸 발견했다. 2000년대 초반 책들은 물론이고, 90년대, 80년대, 70년대 책들까지 (심지어 세로쓰기 책이 있더라...) 볼 수 있었다. 의외로 소설은 없고, 전부 인문사회서여서 신기한 느낌으로 책을 구경했는데, 슈미트의 과 를 발견했다. 책을 들어 인쇄 연도를 살펴보니 95년쯤이다. 그러니까 30년이 더 된 것이다. 놀라운 기분으로 책을 열어보니, 원 책 주인이 책을 읽으며 꼼꼼히 줄을 쳐 놓았고, 책장 여백에는 가끔씩 메모가 적혀 있었다. 법이라는 글자를 쓸 때마다 한자를 사용한 것을 보아, 어떤 법대생이 아끼며 공부하던 책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혹시나 책 주인이 이 할아버지가 아닌가 해 슬쩍 쳐다보았으나, 여행용 의자를 ..
- 김재홍 번역본 에 감탄하고 나서, 읽고 있는 책은 천병희 번역본 . 어떻게 그런 식으로 건너뛸 수 있는지 스스로도 답할 수 없으나, 근본없이 읽는 것이 딜레탕트의 소명(?)이니, 그냥 그러려니 한다. 각설하고, 으로 돌아가면, 김재홍 선생이 참여한 공역본과, 천병희 번역본 두 종이 있는데(일단 원전 번역은 그렇다.) 그냥 읽기는 천병희 번역본이 훨씬 수월하다. 교양으로 읽는 거라면 천병희 번역본을 애정해도 좋지 않을까. - 은 신기한 책이다. 세상의 어느 책을 보아도,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선 이렇게 살면 된다!" 라고 확정하는 책은 별로 없다. 좋은 정치를 위해서, 인민의 복지를 위해서, 올바른 통치를 위해서, 신앙을 위해서, 세상사가 어떤지 논평하는 등등의 주제를 다루면서 곁가지로 다루는 경우는 ..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알게 된 문순표, 박동수, 최봉실 선생이 번역한 (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6578998)가 출간되었다. 특히 최봉실님(선생이란 용어를 쑥스러워하심)이 기획한 출판사 '포스트카드'의 첫 책.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선전하길 기원한다. 책소개모든 것이 리믹스된 시대의 새로운 사유와 미학기존의 권력을 해체하기, 새로움을 조합하기어떻게 새로움을 사유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영어권에서 기술철학과 커뮤니케이션학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데이비드 건켈(David J. Gunkel) 노던 일리노이 대학 커뮤니케이션학 교수의 『리믹솔로지에 대하여: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사유와 미학(Of Remixology: Ethics and Aes..
- 틈날 때 조금씩 들춰보고 있는 책 중 하나는 레오 스트라우스의 이다. 본론에 앞서 사담부터 곁들이자면, 이 분이 20세기 정치철학의 대가이며, 그가 쓴 글이 정치를 바라보는 명쾌한 틀을 제시해준다는 점을 십분 고려해도 나는 도통 이 분이 좋지 않고, 앞으로도 좋아질 것 같지 않다. 정치철학의 위대한 형태는 덕의 완성을 기준으로 각 정치체를 비교평가한 고전 정치철학이며, 안전하고도 배부른 돼지가 될 권리를 추구하는 근대정치철학은 저열하다고 평가하는 이 분의 목소리가 늘 의심스럽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 호오를 떠나 배울점도 많아서 떠오르는 대로 정리해 두고 싶다. 오늘은 '정치적 삶'에 대해서 메모. - '정치적 삶'은 '정치적인 것에 헌신하는 삶'이다. 그렇다면 '정치적인 것'이란 ..
니체의 비판을 이해하는 간단한 방법 중 하나는(물론 좋은 방법은 아닐 것이다) 음모론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즉 어떤 규범, 도덕규칙이 그 자체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목적과 이익에 봉사하기 위해 조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우리가 따르는 예절이나 관습, 도덕을 따지고 올라가다보면 그 자체로는 근거를 댈 수 없는 최초 지점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가령, 자식은 부모를 살해하면 안 된다, 는 규범을 생각해보자. 왜 그럴까? 부모는 자식을 길러주고 사랑해주는 존재인데, 그런 이를 죽인다는 건 패륜이 아니냐는 답은 부족하다.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들도 존재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니까. 문제는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를 자식이 살해하면 안된다' 라는 조건을 붙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