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한국 남성, 정확하게 말해 '한국 남성성'에 대한 논의는 (정희진 외 5명, 교양인, 2017) 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니까 '한남')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쓴 최태섭씨의 저작도 그렇고, 반지성주의를 키워드로 삼아 남성성을 다룬 이라영씨의 저작도 이 책의 자장안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읽어보면 학술적 논의라서 딜레탕트가 왈가왈부할 거리는 아니다. 다만, 이 책을 다룬 다른 논문을 참조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일단 오혜진 선생의 논문 (황해문화 96호)를 들춰볼 수 있다. 그런데, 그것과 별도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심히 의심스럽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무엇보다 정희진씨의 다음과 같은 테제가 그랬다. "젠더가(는) 적대를 전제로 하는 권력관계"라는 것. 정치란 적과 동지의 구분에서 시작..
한가한 면이 없지 않지만 아침에 을 읽었다. 총평하면 아렌트 독자가 좋아할 그래픽 노블이자 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렌트 독자가 아니라면 좋아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책이 아렌트 독자를 겨냥한 책이라는 건 제목에서 드러난다. 이라는 평이한 제목은 어떻게 아렌트 독자를 낚는가? 바로 '세 번의 탈출', 즉 아렌트에게는 세 번째 탈출이 없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아렌트의 탈출은 두 번뿐이었다. 대학 졸업 후 독일에서 프랑스로 탈출,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탈출. 아렌트 탈출은 두 번뿐이다. 세 번째 탈출은 무엇일까? 이것이 책이 독자를 끌어당기는 지점이고, 정확하게 자신의 독자를 설정하는 방법이다. 이 책은 한나 아렌트 팬덤북이다. 책의 요약이나 세세한 논평은 피하겠고, ("학자의 삶이란 흥미로울게..
읽기 모임이 끝났다. 짧은 후기.읽기 모임은 일주일에 한번씩 2시간 정도 진행했다. 참가자는 총 12명으로 시작, 최종 참가자 8명으로 마무리. 우려했던 것보다 이탈자가 많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대부분 성실하게 참가해 주셨으며, 매 시간마다 다채로운 이야기를 해 주셨다.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의문스러웠던 점들을 해소할 수 있었고, 깊은 독해 끝에 나온 이채로운 해석에 감탄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매 시간이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총평하자면, 독서모임은 모두에게 유익했다.의 최종 견적은 다음과 같다. 저자 마크릴라는 6명의 지식인 약전을 통해 1) 반론과 회의를 허용하지 않는 일자적 진리를 정치 영역에 도입하여 정치사회에 대한 고려없이 무조건 뜯어고치려는 시도와 2)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변화가 아니라 일거에..
안녕하세요! 마크 릴라의 이 출간된 걸 기념삼아 '독서모임'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모임의 성격은 이렇습니다. "책을 통해 비전과 사유와 깨우침을 '그다지 얻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슬렁슬렁 모여 책을 읽고 이야기한다." 노파심에 한 번 더 강조합니다. "책을 통해 비전과 사유와 깨우침을 그다지 얻고 싶지 않은" 독서인들의 모임입니다. 사유와 비전과 깨우침을 얻고 싶은 분들은 비전을 단박에 획득했다는 계시적 수업이나, 숭고한 진리를 위해 인생을 바치라는 모임에 찾아가시면 되겠습니다. 이 모임은 그런 걸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임은 어떤 모임일까요? 어떤 책에 관심이 있는데, 혼자 읽기는 좀 심심하고, 그냥 넘겨보니 약간 어렵기도 해서 다른 사람과 같이 읽고 묻고 답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을 ..
개정판 (마크 릴라, 서유경 옮김, 필로소픽, 2018)을 읽었다.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은 하이데거부터 데리다까지, 철학과 정치의 경계를 넘나든 20세기 지식인의 삶을 검토하며, 진리의 열정을 전제정치의 불쏘시개로 타락시키는 지식인의 불장난을 명쾌하지만 오싹하게 묘사한다.' 물론 완벽한 소개는 아니다. 철학이 정치와 결합하며 전제의 도구로 타락하는 필연성과 교훈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의 가르침을 덧붙이면 이렇다.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자(지식인)는 정치적인 것을 사유하지 않은 채 신중함 없이 정치에 뛰어들어선 안 된다. 그렇게 한다면, 그는 시라쿠사의 비극을 반복할 것이다. 정치적인 것이란 무엇일까? 정치적인 것이란 정치가 지닌 속성을 추상화한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인 것을 논..
여름에 빡빡한 책은 안 읽는다. 땡기는(?) 책이 있어도 피한다. 2012년, 도 닦는 기분으로 빡빡한 책을 땀 뻘뻘 흘리며 읽었다가 더위를 먹어본 뒤 미련한 짓 안하겠다고 결심한 탓이다. (그렇게 읽은 책이 피와 살이 되었다면 모르겠는데, 지금은 무슨 내용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별볼일 없는 책이었다.) 물론 새 책이 나오면 산다. 하지만 읽지는 않는다. 선선해지면 꺼내볼 뿐이다. 그러니 매년 여름은 쉽고 간결한 장르소설을 읽는다. 물론 일주일에 한 권 정도다. 계보도 모르고 좋아하는 작가도 없기 때문에 그때그때 인기있는 책을 읽는다. 그런데, 올해는 볼만한 책이 없었다. 펼쳐보았던 두 세 권의 책은 기대에 못 미쳤다. 그 때문에 다른 책으로 우회하기로 했는데, 공교롭게도 일본 저자들의 에세이다..
케네스 미노그의 . 며칠 간 띄엄띄엄 읽다가 완독. 아우 재미있어라. 이 분 저작을 더 읽어보고 싶다. 그런데 번역된 책이 없다. 동일 저자의 이름으로 이란 책이 있는데 같은 저자인지 모르겠다. 절판이라 대출해보려 했더니 남산이나 종로 도서관 서고에 있다는 소식. (두둥!) 책에 대해 단평하자면, VSI의 기본 취지에 충실하게도 '교과서' 같은 책이다. 교과서 같은 책은 두 종류다. 하나는 설명이 충실해서 교과서만 잘 읽어도 공부가 되는 책. 다른 하나는 문장이 압축적이고 밀도가 높아서 선생이 설명하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되는 책. 이 책은 후자다. 따라서 독학(?)에는 적당하지 않다. 하지만 열정적인 아마추어라면 저자가 언급하는 책을 읽으며 주요 논지를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 후에 전체를 요약/개괄..
어떤 계기로 특정 계열의 책들을 훑어보았다. 속류 포스트 모더니스트(쓰는 용어만 보면 속류 들뢰지언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해 보이기는 하나, 정확하게 이 사람들이 뭘 읽고 이렇게 말하는지 알 도리가 없으므로 속류 포스트 모더니스트로 묶는다)라고 분류할만한 이 사람들 책은 비슷비슷하다. 새로운 비전, 사유, 삶을 강조하는 이 책들의 핵심은 '생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아닐까. "내가 쓴 이 글이 숨 막히는 세상에 청량한 바람 한줄기 위안이 되는 것도 좋지만, 사막을 옥토로 만들 물음의 씨앗을 품고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질문하는 글'은 '생성하는 삶'으로 이어진다." - 은유, , 메멘토. 2015. 번역해보자. 글쓰기는 위안이 아니다. 글쓰기는 사막처럼 황폐해진 당신..
정상태, , 유유, 2018, 4月반양장, 신국판보다 작음, 142쪽, 10,000원.평소와 다르게 이 책은 견적부터 내는 게 옳겠다. 왜? 책 스스로 누구에게 읽혀야 할지 견적을 내고 있으니까. 소개하자면 이렇다.핵심독자 : 완성된 원고를 출판사에 투고하기 전에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알고자하는 사람, 자신의 지식, 경험, 감상등을 글로 써서 책으로 출판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하게나마 해 봤거나 이를 실현에 옮기기 위해 이제 막 원고를 쓰기 시작한 사람, 투고 원고를 검토하는 출판사의 특별한 기준이나 관점이 있는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 이미 한 차례 이상 투고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거절의 메일을 받아 본 적이 있는 사람, 그럼에도 또다시 원고를 수정하고 투고하기로 마음먹은 사람..
오늘 고갱님이 약속을 펑크내어 일찍 퇴근. 참새 방앗간 못 지나친다고 동네 서점에 들렀다가 펼쳐 본 책은 토마스 프랭크, (고기탁역, 열린책들, 2018). 핵심만 요약하면, 트럼프 당선을 불러온 민주당은 일반 노동계층의 삶을 개선하려는 전통적인 의제를 잃은 것도 모자라 아예 배반하고 말았다는 것. 테크노크라시와 능력주의에 기대 노동계층과 완전히 유리되어 돈많은 강남좌파의 진보연 놀음에 집착하다가 구제불능의 수준까지 갔다는 것. 손쉽게 읽히고 상당히 스피디해서 생각없이 집어들었다가 반까지 홀라당 읽어버리고 말았다. (난 고기탁씨 번역을 좋아한다. 유려하다.) 와 연결시켜 이야기하면, 마크 릴라가 이야기했던 '시민적 의제'를 '일반 노동계층의 이익 도모'로 치환해서 읽을만한 시의적절한 책이다. 신문 사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