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니즘 시대의 정치.(2)희랍에서 생성된 정치가 공동의 관심사에 대한 적극적 관여였다면 헬레니즘 시대의 정치는 정치가 통치로, 시민의 참여가 복종으로 변질되는 역사적 굴곡을 보여준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고전 정치사상의 실종이다. 이는 폴리스를 배경으로 하는 정치사상이 제국의 확장된 공간에서 적응력을 상실한 것이 이유였다. 이 시대의 특징을 살펴보자.(희랍의 자살로 불리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아테나이와 스파르타를 크게 약화시켰고, 도시 국가 전체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 틈을 타 북쪽 지역에 위치한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와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는 희랍지역을 점령, 나아가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다. 이 때를 헬레니즘 시대로 부른다. 이 시기에 희랍의 정치와 고전 정치사상은 심각한 위험을 맞이한다.마케도니..
어떤 이유로 셀던 월린의 을 뼈대삼아 희랍부터 홉스까지의 ‘정치’ 를 간략하게 정리해 둔다.희랍의 정치.(1)정치는 공동체와 관련이 있다. 하여 참조할만한 저술로 아리스토텔레스의 . 아리스토텔레스는 희랍의 공동체 즉 Polis를 코이노니아 폴리티케(koinonia politike)라고 부른다. 코이노니아는 ‘결사체/공동체'로 번역되는 말이며, 폴리티케는 '폴리스의/폴리스적'으로 번역된다. 합치면 '폴리스적 공동체'가 된다. 이때 정치는 폴리스적 공동체 구성원으로 살고, 행위하고,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정치란 제도나 공적영역의 업무가 아니다. 인민의 어떤 상태다.)그런데 폴리스적 결사체에 구성원으로 존재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런 예을 떠올려보자. 우선 시계를 꺼꾸로 돌린다..
침대에 누워 (한나 아렌트, 윤철희 역, 마음산책, 2016)을 읽었다.('해나 아렌트의 말'로 출간되지 않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수록된 네편의 인터뷰 중 두 편은 이미 접한 바 있고, 다른 두 편도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하나는 텍스트에서 출간된 에, 다른 하나는 한길사에서 출간된에 실려 있다. 물론 번역은 다르다.- 읽으면서 새삼 확인한 것은 한나 아렌트의 매력이다. 그녀의 매력은 치밀한 이론화에 있지 않다. 그녀는 당연하고 상식적인 것들을 낯설게 만들면서 적확한 논평을 바늘 찌르듯 구사한다. 가령 "이봐요... 우리의 총체적인 신화는, 또는 우리의 총체적인 전통은 악마를 타락 천사로 봐요. 타락 천사는 당연히 늘 천사로 남아 있는 천사보다 훨씬 더 흥미로워요. 후자는 우리에게 좋은 이야..
Hannah Arendt (1906.10.14 ~ 1975.12.4) 철학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의 문제라지만 그런 일반론이 성립되지 않는 철학자도 있다. 대표적으로 한나 아렌트가 그렇다. 스승이었으며 한때는 연인이었던 하이데거와는 달리 아렌트에게는 죽음의 음습한 그림자가 전혀 어른거리지 않는다. 그녀는 시작하는 인간의 가능성을 논했고, 죽음을 넘어 어떻게 새롭게 '탄생'할 것인지를 궁구했다. 그녀에게 있어 죽음은 제거된 것도 치워진 것도 아니었으며 극복의 대상도 순응의 대상도 아니었다. 그것은 '이해'되어야 할 것이었으며, 주의깊게 마주하며 견뎌내야 할 것이었다. 그녀는 정말 지긋지긋하게도 죽음과 여러번 맞닥뜨려야 했다. 하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그녀는 새로이 시작하는 인간의 가능성과 탄생의 기..
(Louis Pierre Althusser : 1918.10.16 ~ 1990.10.22) 알튀세르를 서술할때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그의 전기적 사실이다. 그 자신이 와 이라는 자서전을 펴냈음에도 그렇다. 왜냐하면 그의 자서전에서 사실과 의견은 명쾌하게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자서전은 혼란스럽고, 흥분과 좌절을 동시에 표현하며 종종 사실과 인상이 경계없이 뒤범벅되어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버지 대신 삼촌을 사랑했으며 자신의 아버지는 대용품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대해 끊임없이 괴로워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은 확인 불가능한 추측과 의견 또는 반응에 가까우며, 그 '사실'이 (그를 평생동안 괴롭힌) 우울증의 원인인지 혹은 그 결과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