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동네를 걷다가 어떤 할아버지가 좌판을 펼치고 헌 책을 팔고 있는 걸 발견했다. 2000년대 초반 책들은 물론이고, 90년대, 80년대, 70년대 책들까지 (심지어 세로쓰기 책이 있더라...) 볼 수 있었다. 의외로 소설은 없고, 전부 인문사회서여서 신기한 느낌으로 책을 구경했는데, 슈미트의 과 를 발견했다. 책을 들어 인쇄 연도를 살펴보니 95년쯤이다. 그러니까 30년이 더 된 것이다. 놀라운 기분으로 책을 열어보니, 원 책 주인이 책을 읽으며 꼼꼼히 줄을 쳐 놓았고, 책장 여백에는 가끔씩 메모가 적혀 있었다. 법이라는 글자를 쓸 때마다 한자를 사용한 것을 보아, 어떤 법대생이 아끼며 공부하던 책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혹시나 책 주인이 이 할아버지가 아닌가 해 슬쩍 쳐다보았으나, 여행용 의자를 ..
- 김재홍 번역본 에 감탄하고 나서, 읽고 있는 책은 천병희 번역본 . 어떻게 그런 식으로 건너뛸 수 있는지 스스로도 답할 수 없으나, 근본없이 읽는 것이 딜레탕트의 소명(?)이니, 그냥 그러려니 한다. 각설하고, 으로 돌아가면, 김재홍 선생이 참여한 공역본과, 천병희 번역본 두 종이 있는데(일단 원전 번역은 그렇다.) 그냥 읽기는 천병희 번역본이 훨씬 수월하다. 교양으로 읽는 거라면 천병희 번역본을 애정해도 좋지 않을까. - 은 신기한 책이다. 세상의 어느 책을 보아도,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선 이렇게 살면 된다!" 라고 확정하는 책은 별로 없다. 좋은 정치를 위해서, 인민의 복지를 위해서, 올바른 통치를 위해서, 신앙을 위해서, 세상사가 어떤지 논평하는 등등의 주제를 다루면서 곁가지로 다루는 경우는 ..
- 틈날 때 조금씩 들춰보고 있는 책 중 하나는 레오 스트라우스의 이다. 본론에 앞서 사담부터 곁들이자면, 이 분이 20세기 정치철학의 대가이며, 그가 쓴 글이 정치를 바라보는 명쾌한 틀을 제시해준다는 점을 십분 고려해도 나는 도통 이 분이 좋지 않고, 앞으로도 좋아질 것 같지 않다. 정치철학의 위대한 형태는 덕의 완성을 기준으로 각 정치체를 비교평가한 고전 정치철학이며, 안전하고도 배부른 돼지가 될 권리를 추구하는 근대정치철학은 저열하다고 평가하는 이 분의 목소리가 늘 의심스럽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 호오를 떠나 배울점도 많아서 떠오르는 대로 정리해 두고 싶다. 오늘은 '정치적 삶'에 대해서 메모. - '정치적 삶'은 '정치적인 것에 헌신하는 삶'이다. 그렇다면 '정치적인 것'이란 ..
니체의 비판을 이해하는 간단한 방법 중 하나는(물론 좋은 방법은 아닐 것이다) 음모론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즉 어떤 규범, 도덕규칙이 그 자체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목적과 이익에 봉사하기 위해 조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우리가 따르는 예절이나 관습, 도덕을 따지고 올라가다보면 그 자체로는 근거를 댈 수 없는 최초 지점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가령, 자식은 부모를 살해하면 안 된다, 는 규범을 생각해보자. 왜 그럴까? 부모는 자식을 길러주고 사랑해주는 존재인데, 그런 이를 죽인다는 건 패륜이 아니냐는 답은 부족하다.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들도 존재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니까. 문제는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를 자식이 살해하면 안된다' 라는 조건을 붙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
자기수양에 관한 글을 찾아보다가, 생각이 나서 의 미셸 푸코편(p164~184)을 뒤적뒤척했다. 새삼 느끼는 것은 저자 마크릴라의 신랄함인데, 는 유난하다. 다른 에세이는 말할 것도 없고, 가장 강렬한 데리다편과 비교해도 비판의 어조가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무엇이 이 세기의 사상가를 신랄하게 평하도록 만든 걸까. 좀 의아하기도 하다. 외형적으로, 는 제임스 밀러의 에 대한 독후감이다. 하지만, 저자 마크 릴라는 제임스 밀러가 그린 푸코의 모습에 자신의 견해를 첨가하여 좀 더 신랄한 평을 내리고 있다. 이를테면, 제임스 밀러가 그린 푸코가 "자신이 이해한 행복을 고집스럽게 추구한 고귀하고 독립된 정신의 소유자"이자, "관습에 도전해야 한다는 지적인 강박에 사로잡혀 급기야 죽음과 위험한 춤을 추"(p165..